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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66> 자산어보-정약전(1758~1816) 이청(1792~1861)

조선때 국민생선 넙치? 유배지서 쓴 해양백과사전엔 인어 목격담도

  • 서평가·‘고전식탁’ 저자
  •  |   입력 : 2023-05-25 19:25:50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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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 간 바다생태 문외한 손암
- 청년어부 장창대 등이 도와 집필
- 이청은 스승 타계 뒤 책 보완까지

- 1~3권 해양생물들 체계적 정리
- 어류 요리법·효과 등 상세 기록
- 삭힌 홍어 그때도 별식으로 인기

- 2020년 국가 중요 자료로 등재

“자산은 흑산이다(玆山子, 黑山也).”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은 자산어보(玆山魚譜) 서문에서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섬 주변 바다와 산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흑산도(전남 신안군)랬는데, 거기서 손암은 1801년부터 죽을 때까지 15년간 귀양 살았다. 그 심경이 다음 문장에 내비친다.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두운 느낌을 주어서 무서웠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다. 세 번째 문장. “집안사람의 편지에서는 번번이 흑산을 자산이라 표현했다. ‘자(玆)’ 역시 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흑산어보’라고 입속에서 굴려보니 어감이 무겁다.

■ 유배지서 탄생한 첫 해양생물 전문서

후대 화가들은 흑산도에서 귀양 살다가 삶을 마감한 정약전이 눈에 밟힌다. “울며 날아가는 저 물새야. 문풍지 뚫고 들어온 겨울바람에 한 잔 독주가 쓰구나.” 화가 김성룡은 젊은 시절 연작인 ‘유배지-흑산도’(1994년)를 그릴 때 이런 정약전 음성이 환청처럼 들렸다고 전한다.
초고본 자산어보는 1814년에 썼다. 바다 생물에 문외한인 손암이었지만, 10년 넘게 섬에 살다 보니 어보를 쓸 엄두가 났다. ‘그래도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해’. 곰곰 생각해보니 성품이 꼼꼼하고 고서를 좋아하는 청년 어부 장창대(張昌大, 1792~?)가 적격이었다. 손암이 내민 손을 그가 잡았다. 그가 들려준 내용이 본문 중 “장창대가 말하기를~”하는 식으로 출처를 달고 나온다. 손암은 장창대를 “바닷가 선비”라고 다독였다.

저술에 큰 도움을 준 이가 또 있다. 손암보다 34세 어린 이청(李)이다. 그는 초고 자산어보를 손암이 타계한 뒤 증보·재편집한 공동 저자로 거론된다. 본문에 ‘청안(案)’ ‘안’ ‘우안’이란 표현이 자주 보인다. 모두 이청이 낸 안(의견 생각)이라는 뜻. 손암은 자식뻘인 장창대·이청과 스스럼없이 교류하고 함께 연구한, 열린 학자였다. 손암은 술 좋아하고, 성격이 소탈·후덕해 주민에게 존경받았다. 그는 신지도→흑산도→우이도 순으로 유배 거처를 옮겼는데 그때마다 주민들이 아쉬워하면서 붙잡았다.

서문에 따뜻한 애민 정신이 흐른다. “병을 치료하고, 이롭게 쓰이게 하며, 재물 관리를 돕고, 시인들에게 창작 자료가 되도록 이 책을 짓는다”고 썼다. 저술하다 보니 생물 이름이 원래 없었거나, 있지만 자신이 몰라 붓방아를 찧었다. 이때 토속 이름을 따르든지, 아예 손암 자신이 새 이름을 지었다. 중국식 이름을 따르지 않고 우리 식으로 불렀다. 아쉽게도 이들 이름은 전문·대중성이 부족해 후대에 통용되지는 않았다.

유배·과학 도서다. 이는 실학자 손암이 ‘실사구시·이용후생’하는 실학 정신을 실천한 결과. 이준익 감독이 2021년 개봉한 흑백영화 ‘자산어보’에 그런 모습을 되살려냈다. 손암 장창대 가거댁 이강회(이청)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와 정겹고 애잔한 바닷가 정감을 전한다.

흑산도를 포함한 서남해에 서식하는 바닷고기, 패각·해조류 같은 해양생물을 두루 다뤘다. 표제 생물 이름을 제시한 후 외형(생김새 색깔 크기)을 설명하는 백과사전 형식이다. 맛 습성 약효 어획법 목격담도 실었다. 이렇게 해서 200여 년 전에 우리나라 첫 해양생물학 전문 서적이 3권 1책으로 나왔다. 다룬 해양생물은 226종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 중 종수가 가장 많다. 한국 첫 어류 전문서는 김려(1766~1821)가 우해(현재 경남 진해)에서 유배하며 어패류 103종을 기록한 ‘우해이어보’(1803년)다. 우해이어보·자산어보(1814년)·난호어목지(1820년, 임원 서유구 저)는 조선 3대 어류학서.

■ 시대상부터 어원까지… 해양생태계 이해 도움

자산어보는 1~3권으로 짰다. 1권은 비늘 어류, 2권 비늘 없는 어류와 껍데기를 가진 해양생물, 3권 기타 해양생물(갯강구 가마우지 해표 해초 등) 편이다. 2권에 고래 대하 해삼 군소 오만둥이를 넣었다. 껍데기를 가진 해양생물로 바다거북 게 전복 조개 굴 고둥 말미잘 거북손 성게 불가사리를 올렸다. 현대 지식에 견주면 오류들이 보인다. 하지만 서남해 해양생물을 모아 틀을 세워 분류한 시도는 박수받아야 한다.

자산어보 원전(손암 초본)은 손암 사후에 정약용 가문이 잘 챙겼을 법한데 웬일인지 사라졌다. 필사본(국내외 12종)으로만 전하는데 그림이 없다. 손암은 원래 그림이 들어가는 ‘해족도설’을 구상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다작 학자인 아우 정약용이 “글을 쓰는 게 그림을 그려 채색하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라고 해 그 조언을 따랐다. 시각 자료가 가진 힘을 알아보지 못한 당시 사정을 보여준다.

장창대 발언은 1권(鱗類) 중 청어 편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영남산 청어의 등골뼈는 74마디, 호남산은 53마디입니다”라고 말한다. 현대 조사치인 52~54개(이태원 지음, ‘현산어보를 찾아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뜬금없어 보이는 목격담도 풀어놓았다. 2권 나팔고둥(牛角螺) 편에서 이 생물에 대해 “이것이 산속에도 있는데 소리를 내면 2, 3리 밖에서도 들립니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면 보이지 않고 다른 데서 소리가 나 아무도 그곳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는 설명을 올렸다. 손암이 그 말을 듣고 수색했는데 허탕 쳤다.
손암 거주지에서 본 서해. 자산어보 생물종을 길어올린 바다다.
조선 시대 일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은 갓 잡은 고등어는 회로도 먹는데 그땐 그렇지 않았다. 어류가 풍부해 굳이 고등어를 날것으로 먹지 않았을 성싶다. 말린 은상어 날개는 ‘자연산 보온재’였다. 불로 따뜻하게 데워 젖멍울이 생긴 유방에 대면 통증이 가셨다고 한다. 미역은 산후 몸조리 특식(부인병 치료), 바다표범 성기는 남성 정력제로 대우받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어종은 뭘까. 꾸준하게 많이 나고 즐겨 먹는다면 그 범주에 들 만한데 조선 시대엔 넙치가 국민 생선이었다. 한자어로는 접어(鰈魚). 한반도를 ‘접역(鰈域)’으로 부를 정도로 많이 잡혔다. 삭힌 홍어는 예나 지금이나 별식. 2권(無鱗類) 첫 표제어가 참홍어다. 국을 끓여 먹으면 배 속 덩어리(징가)를 없애는 데 좋다. 손암은 암수 참홍어 습성을 설명할 때는 도덕군자가 된다. 암컷 홍어가 낚시 미끼를 물고 엎드려 있으면 음경이 둘인 수컷이 다가가 교미한다. 이때 낚싯대를 채면 암수가 같이 달려 올라온다.

이를 두고 손암은 “암컷은 식탐, 수컷은 색욕으로 죽게 됐으니 색욕을 탐하는 자에게 경계가 된다”고 썼다.

조선 3대 어류학서. 왼쪽부터 난호어목지 (서유구, 1802년), 자산어보, 우해이어보(담정유고 제8권, 김려, 1803년).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인어(人魚). 상상 속 바다 동물이다. 해양과학 도서인 이 고전이 정식으로 다루면 어색할 듯한데 2권에 올렸다. 손암도 아는 바가 없었다. 인어(속명 玉明魚)-형사인(形似人, 모양이 사람과 비슷하다), 딱 3자만 썼다. 전체로 보면, 표제생물을 설명하는 본문 분량이 일정치 않은 단점을 보인다. 나머지는 이청이 인어에 대한 고증·의견을 구구절절 달아 메웠다. 안면이 사람 웃는 얼굴을 닮은 상괭이, 사람 소리를 내는 물고기 등을 인어로 봤다. 이청은 ‘산해경’ 같은 고문서에서 인어 관련 다섯 실마리를 끌어와 덧붙였다. 상반신이 여자인 인어는 믿지 않았다.

게란 이름은 어디서 나왔나 하는 궁금증도 풀어 준다. 이청은 송나라 나원이 쓴 ‘이아익(爾雅翼)’에서 이 갑각류가 다리를 굽히며 몸통을 숙여 ‘궤(跪)’라 부른다며 ‘게’란 이름은 여기에 뿌리를 둔다고 썼다.

자산어보 가치를 높여 현실에 반영하는 노력이 잇따른다. 이 책을 저술한 공로로 2012년 과천국립과학관 ‘과학기술인 명예의전당’에 손암 이름이 올라갔다. 2020년엔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됐다. 갈수록 자산어보가 우리 해양 생태계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게 분명하다. 출렁이는 19세기 한반도 바다! 조선 시대 심장이 서울이었던 시절, 바다에서 뭍으로 나온 책이다. 모두 서울만 바라보고 찾아갈 때, 그렇게 뭍으로만 쏠린 시선을 삼면 바다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겼다.

손암은 마지막 표제 생물로 가산호(假珊瑚, 뿔산호류)를 설명한 후 결론을 쓰지 않았다. 썼다면 어떤 내용일까. 벌 받으려 바다에 간 손암이 “우리 바다는 펄떡펄떡 뛰는 푸른 심장입니다”라고 귀띔했을 듯싶다. 손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제대로 실천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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