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간 무대인사 가는 연예인 태워
- 고 노무현 대통령 닮은 기사 별명
- 시간 촉박해도 안전운행 최우선
“20년간 이 일을 했는데, 한국 영화의 좋은 시절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그래서 웃음으로 떠들썩한 버스를 운전하고 싶다.”
 |
| 최기웅 기사가 특별 제작한 리무진 버스의 운전석에 앉아 있다. 김정록 기자 |
지난 20년간 500~600편의 한국 영화 무대인사를 위해, 특별 제작한 리무진 버스로 서울 부산 울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 목포 등 전국 극장에 무대인사를 가는 배우들을 실어 나르며 한국 영화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최기웅 기사의 말이다. 최근 경기도 의왕시의 차고지에서 만난 최 기사는 “팬데믹 이후 쭈욱 쉬다가 지난해 ‘범죄도시2’를 시작으로 ‘비상선언’ ‘늑대사냥’ ‘다음 소희’ ‘멍뭉이’ 등으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영화 흥행에 대한 것은 이제 조금 감이 온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여행사, 라이브 카페, 산업폐기물재생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해온 그는 2000년 영화 크레인 사업을 하던 지인의 권유로 영화 스태프를 운송하는 일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IMF로 힘들던 때였는데, 버스 한 대로 밥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운송 버스를 운전했다.” 그러던 최 기사는 모 그룹 회장의 전국 순시나 바이어 견학에 이용되던 버스를 사들여 ‘무대인사 전용 버스’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둘러앉는 테이블 석을 비롯해 28개 좌석을 갖춘 럭셔리 버스로 처음 무대인사를 나선 것은 한국 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2003)였다. 당시 강우석 감독을 비롯해 안성기 설경구 등 실미도 부대원들과 함께 전국을 다녔다.
“‘실미도’ 때 강 감독님과 배우분들의 평이 좋았다. 무대인사용으로 적격이라 해서 버스 내부 사진을 찍어 각 홍보사에 보내고 해서 홍보가 됐다.”
당시는 배우들이 무대인사가 있는 극장으로 각자 오던 시기였는데, 하루에 여러 극장을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함께 다니면 좋겠다는 홍보사의 생각과 맞아떨어져 점차 최 기사를 찾는 홍보사는 늘어났다. 특히 전국 다른 도시로 다닐 때는 큰 장점이 있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무대인사가 너무 많아 홍보사끼리 경쟁하기도 했다. 저의 원칙은 선약이 우선이었다.”
영화계에서 자리 잡은 최 기사에게는 생김새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 기사’라는 별칭도 붙었다. “어느 날인가 박중훈 씨가 어깨를 주무르면서 ‘각하가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합니다’고 하더라. 제가 건강해야 안전 운전을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20년을 운전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지금까지 사고 한번 없었다는 것이다.”
배우들을 태우고 전국으로 무대인사를 다니기 때문에 최 기사가 가장 크게 신경 쓰는 것이 안전과 시간이다. “시간을 다투면서 곡예 운전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만에 하나 작은 사고라도 나면 관객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고, 작품이나 배우들에게도 큰일 아닌가. 그래서 굉장한 긴장감을 가지고 일한다.” 이런 책임감 때문에 영화사에서는 전국의 극장을 내비게이션 없이 찾아갈 수 있고, 주차를 비롯해 무대인사를 위한 배우들의 동선까지 속속들이 잘 아는 최 기사에게 신뢰를 보낸다.
그는 올여름에도 ‘범죄도시3’를 시작으로 배우들과 함께 한국 영화 흥행을 위해 전국을 누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