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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지 ‘닥종이’…중국도 탐낸 조선 대표 수출품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이정 지음 /푸른역사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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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택·스밈·방수 등 뛰어난 품질
- 다듬이질 마무리가 핵심 비법
- 中 황제가 제조법 요구하기도
- 한지 둘러싼 사회 변화 짚어내
- 요강 등 재활용한 선조 지혜도

종이를 발명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좋아한 것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종이였다. 닥종이는 ‘조선의 반도체’였다.
2020년 10일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에서 3대째 전통 한지를 생산하는 이상옥 씨가 닥나무를 원료로 한지 작업을 하는 모습. 함양군 제공 국제신문 DB
이공계 출신에 외국의 다양한 배움터에서 과학사를 전공한 이정의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는 닥종이의 역사와 제지 과정, 한지를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를 짚어낸 책이다. 과학기술과 환경이 얽힌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저자가 닥종이의 역사를 복원했다.

저자는 책에서 우리 선조가 만든 종이가 얼마나 빛났는지 역사 속 사례를 계속 든다. “1425년에는 ‘종이를 발명’한 나라인 중국의 황제가 조선 왕 세종에게 ‘종이 만드는 방법을 적은 글’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중국에서 ‘고려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세종은 전주의 지장을 불러들여 이에 응했지만, 이후로도 조선 종이에 대한 요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을 방문한 명의 사신들은 정해진 수보다 많은 종이를 요구하며 사욕을 채우기도 했다.”

조선 종이의 우수성은 무엇일까. 저자가 꼽은 전통 한지 제조 비법의 핵심은 도침(搗砧)이라는 마무리 과정이었다. 도침은 완성된 종이를 쌓아놓고 다듬이질하듯 두드리는 기술인데 한반도에서만 거의 유일하게 보이는 마무리 공정이다. 도침은 군역을 대신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기에 조선 후기에는 장인 중 가장 높은 공임을 받는 고급 기술이기도 했다.

조선에서만 시행된 도침법을 거친 닥종이는 광택, 밀도, 먹의 스밈, 방수 효과 등 품질이 뛰어났다. 품질이 워낙 뛰어나니 중국과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중국 문인들의 상찬이 쏟아졌고, 명나라와 청나라는 조선에 주요 조공품으로 막대한 양의 종이를 요구했다. 전체 방물 예산의 3분의 1이 종이 관련인 때도 있었다니 그 품질과 인기는 대단했다. 종이를 더 바칠 테니 금은의 조공 양을 줄여달라고 청했을 정도로 한지의 가치는 컸다. 도침 기술은 물걸레로 닦을 수 있는 장판지와 같은 다양한 생활 제품에도 응용됐다.

저자가 전통 한지의 과학기술사에서 주목한 것은 휴지(休紙)와 환지(還紙)라는 친환경적 재활용술이다. 한 번 쓰고 난 종이를 가리키는 ‘휴지’는 ‘돌아온 종이’ 환지가 되어 신발, 삿갓은 물론 북방을 지키는 군사의 갑옷, 새색시가 타고 가는 가마 안의 요강, 가구 등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고 보니 선비는 먼 길을 떠날 때 종이로 만든 작은 세숫대야를 도포 자락에 넣고 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시원한 계곡을 만나면 종이 세숫대야에 물을 길어 담아 점잖게 씻었던 선비들, 가마 안에 종이 요강을 넣어 긴 신행길 중에 급한 용무를 해결하는 새색시는 우리 선조들이다. “이게 된다고?” 인지, “이걸 해냅니다” 인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서지학자 모리스 쿠랑은 고려의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처럼 1000년이 넘은 책의 종이가 색 변화나 부식 없이 깨끗한 옷감처럼 보이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감탄한 바 있다. 1000년을 가는 한지의 우수성은 전 세계가 알고 있다.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문화재 복원에 우리 전통 한지를 쓴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는 뉴스거리도 안 될 정도이다. 문화재 복원 전문가들은 길고 복잡한 닥섬유로 만든 한지는 얇고 잘 찢어지는 다른 종이와는 달리 두껍고 튼튼해 문화재 복원계의 슈퍼스타라고 인정한다.

우리는 닥종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구성이 1000년 이상이라는 닥나무로 만든 닥종이, 전통 한지가 그저 우리 것이라고 자랑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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