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말선초 명문이었던 창녕 성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가 역시 명문가인 순흥 안씨 집안. 부친 성석인은 아들 3형제(성임 성간 성현)를 두었다. 두 형은 시문 음률 글씨에 능한 고위 관리였고, 12세에 아버지를 여읜 막내 성현을 가르쳤다. 성간은 30세로 일찍 눈을 감았다. 용재는 학동일 때 야인 학자 김구지(金懼知)에게 배웠다.
1462년(세조 24) 문과 급제 후 예조판서 장악원제조 관찰사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대제학을 지냈다.
1481년(성종 12) 승정원 우승지일 때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하급 관리를 잘못 뽑았다는 죄목으로 도승지 채수와 함께 일시 파직당했다. 1504년 1월 19일 66세로 숨졌다.
그는 생전에 용재총화 악학궤범 외에도 명나라 사행을 시로 기록한 ‘관광록’과 문집 ‘허백당집’ ‘풍아록’ 같은 책을 지었다. 성종 때 관리 중 일등 다작 저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