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나비 한 마리 살포시 앉았는데

숭숭 뚫린 녹슨 철모 미동도 만무하다

구멍 위 고개 내민 엉겅퀴

깃든 평화 곱디곱다



산산이 흩어지던 조국의 붉은 산하

돌아 돌아 일흔 세 해 유월 그날 무성하다

다 두고 그 자리 그대로

속절없는 넋이여



그리움도 이골나면 눈시울이 맑아오고

저 해는 늙어 가도 늙지 못한 용사여

뿌린 피 이 봄도 꽃피우니

그대 고이 잠드소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유월은 핏빛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 치하였던 1926년 6·10독립만세운동부터 1950년 동족상잔의 6·25전쟁, 그리고 1987년 독재정권에 항거한 6·10민주항쟁까지. 해마다 6월이면 더없이 숙연해진다.

시인은 늙어가지 못하고 젊음에서 생을 멈춘 6·25 참전 용사의 죽음을 애도한다. 숭고한 넋을 그리워하고 고이 잠들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그분들의 희생이 낳은 평화로운 세상이 곱디곱다고 감복한다. 이 시를 읽으면 호국영령에 보답하는 길은 무엇일지 자꾸만 되묻게 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움이 순전히 그분들의 목숨값으로 얻은 보상으로 여겨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