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 히로아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8부작 드라마 ‘파도여 들어다오’는 오랜만에 만나는 흥미로운 일본 드라마였다. 언제부터인가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길고 긴 일장연설로, 끝내 원치 않은 교훈을 던져주려는 경향이 있어 일본드라마와는 꽤 오래 거리를 두고 있던 참이다. 때마침 K-드라마 수준이 일취월장으로 상향 평준화되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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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드라마 '파도여 들어다오'의 주인공 미나레 역의 배우 코시바 후우카. 공식 홈페이지 캡처 |
이 드라마는 범상치 않은 기운의 20대 여자 주인공 ‘미나레’가 만취한 채, 처음 보는 중년의 라디오PD에게 실연에 관한 푸념을 털어놓다가 우여곡절 끝에 심야방송 라디오 DJ로 데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캐릭터 강국 일본에서 만든 드라마인 만큼 독특한 캐릭터가 이야기를 강력히 견인해 간다. 어쩐지 ‘스트릿 우먼 파이터’로 유명해진 우리나라 댄서 ‘아이키’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미나레 역을 맡은 배우 코시바 후우카는 오디오가 빌 틈 없이 속사포처럼 수다를 쏟아내는 연기로 다른 드라마 주연들보다 최소 2배 이상 대사량을 소화한다.
보통의 경우, 이런 캐릭터는 태생이 내성적인 대문자 ‘I’ 성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은 대면하는 순간부터 기가 쪽쪽 빨리는 부담스러운 캐릭터다. 하지만 드물게 맛깔나게 말맛을 살려 비록 일방적인 소통이라도 끝까지 경청하게 되는 흥미로운 수다쟁이들이 있다. 기가 빨리기는커녕 좌충우돌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널리 웃음을 유발하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귀한 존재들이다. 미나레 역시 그런 수퍼히어로급 수다쟁이다.
자막으로는 오롯이 전달되지 못하겠지만, 오랜만에 양질의 수다로 잔뜩 기운을 채워주는 작품을 만나서 반갑다. 정해진 콘셉트 없이 즉흥으로 진행되는 아슬아슬한 라디오 방송처럼, 주인공 미나레의 뇌내망상과 필터 없이 쏟아지는 말로 진행되는 에피소드들은 매회 범죄스릴러 오컬트 납치극 재난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통쾌하게 클리셰를 부수는 쾌감도 만끽할 수 있는 드라마다.
드라마 이전에 12부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있다. 두 작품 모두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모두 각기 강점이 있는데, 조금 더 친절하게 정리된 드라마 버전을 먼저 감상하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