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英 헨리 8세 때 법관이었던 저자
- 국내외 전쟁에만 몰두한 왕실과
- 굶주리는 백성 보며 정치에 환멸
- 소설로 이상적 공화국 모습 그려
- 천연요새 같은 대륙 속에 원형 섬
- 집은 추첨하고 주부는 가사 해방
- 농업 기반의 공동생산·소유 지향
- 안락사 등 주장해 종교계는 불편
- 왕명 거역한 죄로 결국 참수 당해
“이보게. 내 목은 작달막하니 조심해서 쳐야 할 거야. 그리고 죄 없는 내 수염은 잘리지 않도록 옆으로 넘기려 하니 잠시 시간을 주게나.” 반역죄로 체포돼 영국 런던탑에 15달간 갇혔다가 도끼로 목이 잘리게 된 50대 죄수가 처형을 코앞에 두고 망나니에게 여유를 부렸다. 1535년 7월 6일, 죄수는 토머스 모어 전 대법관.
모어는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 이혼을 요청하는 서한에 서명을 거부한 대가로 사형을 선고받은 후 6일 만에 참수됐다. 그가 목숨 잃은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회를 세웠다.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던 모어는 끝까지 ‘아니 되옵니다’. 절대군주가 감춘 역린을 두 개나 건드렸다.
■ 내전·빈곤 현실 속 낙원을 꿈꾸다 |
| 헨리 8세 이혼을 반대하다가 런던 타워에 투옥된 토머스 모어가 참수되기 직전을 묘사한 삽화. 모어는 처형장에서 망나니에게 농담을 건네는 등 끝까지 의연한 자세를 보였다. |
모어는 참나무처럼 단단한 신념으로 무장한 혁신가였다. 그는 소설 형식을 빌린 사회·정치 비판서 ‘유토피아’(1516년)를 펴내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부제가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대해서’. 라틴어로 쓴 초판을 1516년 벨기에 중부 브라반트주 루뱅에서 펴냈다. 영어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둘 때 ‘좋은 나라, 이상향’을 뜻한다. 라틴어로는 ‘우토피아’라고 읽는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란 의미다.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이에게 낙원과 다름없는 세상.
자기 몸 하나만 챙기며 살아가기도 버겁다. 그러면서도 모든 이가 행복하게 살 방도는 없을까 하는 푸념 같은 소망을 지니기도 한다. 모어가 그랬다. 통 크게 이상 국가를 그려 보았다. 플라톤(기원전 428~347)이 ‘국가’에서 꾸었던 꿈을 실현하려는 듯이 말이다. 꿈은 현실을 반영한다. 모어에게 당대는 악몽. 영국 왕실·귀족은 프랑스와는 백년전쟁(1337~1453년)을, 국내에서는 장미전쟁(1455~1485년)으로 불리는 내전을 치르며 백성을 전쟁통으로 내몰았다.
지주들은 고수익 양모 장사를 하려고 경작지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길렀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인클로저 사태. 땅에서 내쫓긴 농민은 길거리 거지로 전락하거나, 숲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신교는 기존 가톨릭에 종교개혁으로 맞섰다. 탁발 수도사와 순례자가 넘쳐났다. 민간인은 신앙을 잃고, 백성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드니 인권·공익 신장은 공염불. 이 난리 와중에 르네상스 인문주의 물결이 밀려들자 인간을 고찰하는 이성이 서서히 눈을 떴다.
런던 재판관으로 일한 모어는 이런 시대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이상국을 만드는 길을 찾자.” 군주에게 아부하며 영화를 좇지 않고 대중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자 결국 목숨마저 내던진다.
■ 공동 소유·생산체제가 진정한 평등 실현 |
| 이상 공화국인 ‘유토피아’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섬. 1516년 출간된 책 속 삽화. |
‘유토피아’는 2권으로 짠 소설. 모어가 화자인 ‘나’로 등장한다. 그는 어느 날 지도에 없는 ‘유토피아’란 둥근 섬에서 5년간 살다 유럽으로 돌아온 포르투갈인 탐험가(라파엘 히틀로다이오)를 친구 페터 힐레스를 통해 소개받는다. 세 사람은 만나 대화를 나눈다. 먼저 당대 영국 사회와 정치, 종교를 한바탕 비판한다(1권). 국왕도 도마 위에 올렸다. “백성에게서 삶에 필요한 것을 빼앗지 않고는 오류를 바로잡을 방법을 모르는 왕은 전혀 자격이 없습니다.”
2권에서 별세계인 ‘유토피아’를 설명한다. ‘나’는 그날 오간 대화를 그대로 옮겨 책으로 펴내며 이렇게 쓴다. “…지금으로서는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모든 것에 다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유토피아 공화국에서 시행되는 많은 게 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1, 2권 앞뒤에 편지글들을 넣었다. 이 글에 집필 의도, 시대 배경, 자찬 해설이 나온다. ‘유토피아’ 위치는? 반드시 밝혀야 할 요소. 단테는 ‘신곡’에서 천국·연옥·지옥이 위치한 곳을 적시하지만, 모어는 그렇잖다. 그곳이 어딘지 라파엘이 말하는 순간 시종이 다가와 귓속말을 건네는 통에 듣지 못했다며 눙친다. 영국 문학 특징인 해학과 풍자. 본문 옆에 소제목 같은 난외주(欄外註)를 달아 참견도 즐겼다.
유토피아는 이렇다. 54개 자치 도시(도시당 인구는 10만여 명)로 이뤄졌다. 대륙 일부였지만 주변에 수로를 둘러 파서 원형 섬이 되었다. 암초가 많아 외부 배가 스스로 들어오기가 극히 어려운 천연 요새다. 무엇보다 도드라진 제도는 공동 소유·생산 체제다. 필요한 물건은 시장에서 공짜로 가져다 쓴다. 농업이 주력 산업. 도시민도 2년간 농부가 된다. 살 집은 10년마다 추첨으로 얻는다. 잘 가꾼 공동정원이 주민 사랑방. 관청은 성찬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주부는 가사 노동에서 풀려났다. 주민은 늘 한 종류 옷만 입는다. 화려한 복장은 멸시 대상. 금은이 돌처럼 흔해 죄수 쇠고랑 재료로 쓴다. 시장은 의회에서 비밀투표로 뽑는데 독재 의혹이 없다면 평생 재임이 가능하다.
500여 년 전 모어가 꿈꾼, 이상 국가는 자본주의에 물든 현대에선 실현 불가다. 가톨릭 신앙(영혼 불멸), 아테네 민주정(자치와 자율), 스토아철학(금욕과 행복주의), 농본주의 위에 세운 신기루 같다. 그러면서 유토피아는 거울이다. 빈부 격차, 차별, 편 가르기, 능력 우선주의에 길들어 공익과 이타심을 저버린 현 인류를 비춰 준다. “모든 사회악이 사유재산에서 비롯한다.” 재화를 공동으로 생산해 공유해야만 진정한 평등과 엄정한 정의가 실현된다는 신념. 사회민주주의가 여기서 싹을 올렸을까.
■ 목숨까지 내놓으며 지켰던 신념들 |
| 헨리 8세 |
당대 가톨릭을 불편케 만들었다. 위중한 환자에게 안락사를 권하는 대목이 그렇다. 제한된 조건 아래에선 이혼, 성직자 결혼도 가능하다. 고해성사는 사제에 앞서 가족에게 먼저 해야 한다는 대목도 보인다. 저자는 이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열혈 인문주의자였다. 모어는 대법관으로 재직하며 개신교도를 탄압해 비난받았는데, 유토피아에선 모든 종교를 수용하는 관용을 보였다. 그는 유명한 변호사였다. 이 고전에선 변호사를 강하게 비판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자를 지도자로 꼽았다. 모어는 학자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이들은 누구나 해야 하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 학자와 더불어 시장·관리·성직자가 지도자 계층. 시민은 관리를 ‘아버지’라 부른다.
당대 영국 사회는 ‘꿀벌처럼 열심히’ 일하는 이를 칭송했고, 모어 자신도 일하지 않고 놀며 먹고 사는 귀족을 호되게 나무랐다. 하지만 유토피아에선 적게 일하는 게 미덕. 모어가 이 고전에서 제시한 적정 노동시간은 하루 6시간이다. 오전과 오후에 3시간씩. 그래야만 시민이 자기 계발에 매진하고, 여가를 더 즐긴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두 독서하고 강의를 듣는다. 유토피아 제도와 관습은 매우 엄격하다. 전체주의를 떠올리게 할 정도. 당연히 음주 매춘은 허용되지 않는다.
‘유토피아’에서 이상향을 그렸지만, 완벽하지 않다. 가부장주의와 노예제도, 전쟁이 필요악이라는 불편한 시각이 뚜렷하다. 대영제국이 오랫동안 국내외 전쟁을 해온 관성이 드러난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남녀가 각각 상대방 나신을 보고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결혼해야 한다는 대목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황당하지만 지혜로운 배우자 선택 방식”이라는 선수를 쳤다.
현대는 사유재산제를 기반 삼은 자본주의 세상이다. 빈익빈 부익부 같은 폐해를 안고 가는 중이다. 모어가 그린, 사유재산이 사라지는 세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세상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유토피아’일까. 하지만 꿈마저 버려야 하나. 죽은 사회처럼. 모어가 자신 생명을 내던지면서 지키고자 했던 그런 신념들이 사라진 사회는 끔찍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