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례없이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폭염경보 알람은 일상이 됐다. 요즘 피서는 에어컨 바람이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에어컨이 일상화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선풍기조차 없던 시절에는 그늘 아래에서 흔드는 한 자루 부채만이 오롯한 피서 용품이었다. 나아가 마루나 방바닥에 대나무 돗자리 한 장 깔고 누우면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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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배산성에서 발견된 대나무돗자리. 부산박물관 제공 |
2017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부산 연제구 배산성 집수지를 발굴하던 필자는 진흙 뻘 사이에서 대나무 돗자리 한 장을 발견했다. 국내에서 발굴 사례가 전무한 유물이었다. 돗자리가 발견된 배산성은 신라에서 축성한 산성으로, 돌로 정교하게 쌓은 성벽과 전국 최대 규모 집수지 2기가 발굴되면서 유명해졌다.
1호 집수지에서 발견된 돗자리는 표면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신경을 곤두세워 다루지 않으면 훼손될 상황이었다. 조사단원들은 유물이 상하지 않도록 면봉으로 조심스럽게 진흙을 걷어 나갔다. 작업이 진척되자 돗자리 면적은 점차 넓어졌고 전부 노출하기까지 약 일주일 소요됐다. 가로 254㎝ 세로 123㎝에 달하는 대형 돗자리의 발견이었다. 신라에서 제작돼 집수지가 폐기될 무렵 함께 매몰된 채 1500여 년 시간을 버티다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현대 과학으로도 해명하기 어려운 신라의 기술답게 배산성 돗자리 또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재료가 되는 대나무 외피와 내피를 벗겨 납작하게 만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쪼개 대쪽을 만들었다. 대쪽 길이는 2.5m에 달하지만 너비는 5~6㎜, 두께는 1㎜ 정도에 불과하며, 휘어지거나 끊어져 상한 부분조차 없다. 돗자리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방법으로 신라의 ‘나노기술’이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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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돗자리를 발굴할 당시 현장 모습. |
가공된 여러 장 대쪽은 너비 4~5㎝ 정도 풀잎으로 지그재그로 엮었다. 풀잎 양면에는 옻칠을 해 일종의 접착 효과를 내면서도 심미적인 체크 무늬까지 살리도록 의도했다. 현장에서 확인된 돗자리 세로 길이는 123㎝이지만 실제로는 더 길었을 듯하다. 가로 길이 대비 1: 2 정도 비율이라면 최대 5m까지 추정된다. 그러면 한 장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대쪽 수량은 약 1000매이니 장인이 들였을 시간과 노력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배산성 돗자리 발견은 신라 돗자리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증거다. ‘삼국사기’ 잡지 직관조에 나오는 석전(席典)은 신라 관부 중 하나로 돗자리를 다루는 관청으로 여겨진다. 나라에서 돗자리 생산과 보급을 전담할 정도로 귀중한 물품이었으며, 궁중에서 쓰거나 일부 귀족에게 나누어 주었다. 골품제 사회인 신라에서는 6두품과 5두품 귀족의 수레 휘장으로 죽렴 혹은 왕골자리(莞席)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돗자리를 소유할 수 있는 계층은 진골과 상위 귀족 일부라는 의미이다.
배산성 돗자리는 명품이라 할 만큼 귀족이 탐낼 만한 물건이다. 배산성 돗자리는 수복·보존 과정을 거쳐 부산박물관 유물관리동에 보관돼 있다. 미공개된 배산성 돗자리가 햇볕을 볼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