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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호수에 댐 세운 옛 소련…아랄해의 재앙 시작됐다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2 <3> 페르가나 분지 잘랄아바트~국경도시 아슬란밥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8-29 18:09:19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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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강물 흘러 들어온 호수
- 카자흐스탄 우즈벡 어부의 터전
- 목화산업 위한 댐 건설로 사막화

- 페르가나 분지 두고 국경선 복잡
- 분쟁요소 일부러 둔 소련의 심술

- 분지의 시작에 도시 잘랄아바트
- 인근엔 여름 피서지 아슬란밥
- 23m폭포서 현지인들 더위 날려

한여름 밤에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레닌봉과 황금빛 아침 해가 떠오르는 산속 호숫가에서 마르모트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민다. 부지런한 소와 말은 산 위에서 한가로이 아침 식사를 하고, 여행객은 다시 짐을 꾸려 길을 나선다. 짐 싣는 걸 지켜보던 유르트 주인장이 산 아랫마을까지 자신의 손주들을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5인용 지프 차량에 우리 일행 셋만이 타고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히치하이킹이 흔하다. 그만큼 사람이 두렵지 않고 사람 사이의 신뢰·친절·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아다과계곡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물줄기. 이러한 수천 수만 개의 물줄기가 모여서 나린강과 카라다리야강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을 내려준 차는 다시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목적지인 ‘잘랄아바트’에 도착하려면 대 여섯 시간을 달려야 하지만 지겨울 겨를이 없다. 이곳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산도 없고 같은 풍경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돌산이고 어떤 곳은 초원이고 또 어떤 곳은 흙산이다. 그러니 어느 지역의 풍경이 알프스와 닮았다는 이유로 키르기스스탄 자체를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고 부르는 것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은 ‘키르기스스탄’이다.

국토의 전체 면적은 우리 한반도 크기보다 조금 작지만, 여행하면 그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길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기 때문이다. 직선으로 가면 가까운 거리를 휘휘 돌아 둘러 가다 보니 훨씬 크고 길게 느껴지는 것이다. 천천히 세세히 다 ‘둘러보면서’ 갈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빨리빨리’를 포기해야 한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는데 목동도 없는 한 무리의 소와 양이 느린 속도로 길을 건너고 있다.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대부분 가축 떼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심하게 여유를 부리는 무리를 만나면 경적을 울려 재촉하기도 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낮 동안 도로에서 자동차로 가축을 치게 되면 운전자 과실이다. 운전자가 배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이 야간에 발생하면 가축주가 차주에게 배상해야 한다. 유목민의 후예다운 아름다운 법이다.

아슬란밥에 있는 ‘작은 폭포’라는 이름의 ‘키치케네이 사르크라트마’ 폭포. 피서를 위해 온 인근 지역 사람들로 가득하다.
파미르 산맥을 뒤로한 채 북쪽으로 넘어오면 산세가 낮아지면서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페르가나 분지다. 이곳은 크고 작은 산으로 뒤덮인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곡창지대다. 북쪽으로 텐샨 산맥, 동쪽으로 페르가나 산맥, 남쪽으로 기사르알라이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서쪽으로는 열려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구의 판이 융기와 하강으로 소용돌이치던 태곳적에 이곳은 호수로 갇히지 않고 넓고 긴 강물을 품은 분지로 남을 수 있었다. 동쪽을 둘러싼 높은 산맥의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흘러내린 나린강과 카라다리야강이 서쪽의 시르다리야강에서 한데 모여 분지의 한가운데로 흘러가면서 최대의 곡창지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렇게 흘러간 시르다리야강은 다시 국경을 넘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함께 사용하는 아랄해를 만든다. 아랄해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 속의 섬처럼 형성된 거대한 호수다. 국경 없이 흐르는 크고 작은 강물의 나눔과 연결로 만들어진 아랄해는 오랜 세월 수많은 어종의 보금자리였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인근 지역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 크기가 남한 크기의 3분의 2 정도였으며, 염분을 함유하고 있었으나 그리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은 이곳으로 유입되는 두 강물에 댐을 세워 물길을 가둔 후 거대한 목화산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랄해의 재앙이 시작됐다. 마를 것 같지 않던 거대한 호수의 물이 마르면서 염분 농도가 짙어지고 생명이 죽어갔으며 호수는 사막화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물기가 사라진 호수 사막의 염분 가득한 모래바람이 인근 농경지에 내려앉고 소금물이 토양에 침투함으로써 그곳 옥토 역시 생명이 살 수 없는 소금 사막으로 변했다. 아랄해 인근 국가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카자흐스탄을 주축으로 한 아랄해 살리기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쉽지가 않다. 자연을 죽이기는 쉽지만, 되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의 파괴가 닿지 않은 채 계곡 사이로 거침없이 흘러가는 강줄기를 바라보면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음’을 되뇐다.

중앙아시아의 지도를 펼쳐보면 국경선이 복잡하다. 특히 페르가나 분지를 중심에 두고 인접 국가의 국경선이 어색한 모양으로 서로 맞물려 있다. 곡창지대를 서로 사이좋게 나눠 가지라는 뜻이면 좋으련만, 이곳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이 분리 독립할 때 소련이 국경분쟁 요소를 남겨 둔 것이라 한다. 소련은 속국이었던 이들 국가가 서로 단결해 자국을 견제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싸우기를 원했다. 불행히도 그러한 전략은 성공했고 이곳은 최근까지도 국경 문제로 국가 간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산 정상에서 만나는 한 무리의 말.
초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돌산을 휘휘 돌아 길을 내려오니 어느새 산은 낮은 구렁처럼 변하고 넓은 목초지가 펼쳐진다. 페르가나 분지의 시작이다. 분지의 북쪽 지점에 자리한 잘랄아바트는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면서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동서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비슈케크와 오시에 이어 키르기스스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특히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시절 인근에서 온천이 발견되면서 이곳에 군사시설과 병원이 들어섰고 도시는 급성장했다. 현재도 여행객과 무역상이 쉬어가는 곳으로 숙박업소와 자동차 정비업소가 성업 중이다. 특히 도로를 끼고 늘어 선 자동차 수리소에는 먼 길 달려오느라 수고한 낡은 차량을 점검하는 운전자와 고장 난 차를 수리하는 기술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키르기스스탄 도로에서 흔한 풍경 중 하나가 멈춰버린 차를 들여다보는 현지인의 모습일 만큼 자동차 고장은 이곳에서 흔한 일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소비되는 대부분 차는 인근 국가에서 수입한 중고차다. 그 중고차 중에는 거의 폐차 수준의 차도 많다. 겉만 놔둔 채 부속을 거의 다 바꾸거나 수리해 쓴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정비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낡고 오래된 차도 이곳에 오면 부활해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듯하다.

잘랄아바트를 나와 동쪽의 텐샨 산맥 속으로 두어 시간을 달리면 분위기가 사뭇 다른 산골 도시 ‘아슬란밥’에 다다른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우선 가옥 구조에서부터다. 담과 건물의 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크고 높은 대문이 특징인 우즈벡 사람들의 가옥 구조는 대문과 담이 없이 개방된 키르기스인들의 가옥 구조와 확연히 다르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이 가깝다 보니 이곳 인구의 거의 절반이 우즈베크인이다. 아슬란밥은 중앙아시아 최대의 호두 생산지로 유명한데 현지에서는 숲에 있는 자연 폭포와 함께 여름철 피서지로 더 유명하다. 이곳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작은 폭포’라는 이름의 ‘키치케네이 사르크라트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여 23m의 바위 절벽 아래로 낙하하는 것이 전부지만 한여름의 더위를 날리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이곳에서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카자흐인의 구별도 없다. 자연의 선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공유하면서 더불어 즐겁다. 이곳에서처럼 중앙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이 다툼보다는 타협과 공존으로 함께 서로 돕고 함께 행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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