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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500m 산맥이 품었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물길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2 <4> 나린 지구 천연보석 같은 호수, 켈수와 송쿨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9-05 18:51:53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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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산이 덮은 나린에 흐르는 강
- 인근 국가들 생명줄이기도 해
- 여기도 온난화로 물 고갈 위기

- 中접경 텐샨산맥 속 켈수 호수
- 산 정상 눈 녹아내려 물 콸콸
- 가운데 바위산 야생동물 흔적

- 고산 초원에 펼쳐진 송쿨 호수
- 인간들이 물고기 씨 말리기도

키르기스스탄은 수도 비슈케크와 남쪽의 행정도시 오시를 별도로 하고 모두 7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국토의 서쪽에 있는 잘랄아바트 지구로부터 중앙의 나린 지구로 가기 위해서는 페르가나 산맥의 지류를 넘어야 한다. 뱀처럼 굽은 산길을 넘으면, 이전에는 동서를 연결하던 무역상들의 오아시스였고 현재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여행객들의 쉼터인 ‘카자르만’시에 다다른다. 카자르만에서 하룻밤을 쉰 후 다시 나린강을 끼고 동쪽으로 서너 시간을 달리면 키르기스스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나린’에 도착한다. 남쪽으로 중국 국경과 접해 있다 보니 구소련 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발전했던 도시다. 길가에 늘어선 구소련 건축 양식의 낡은 아파트들이 이러한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나린 시는 특이하게도 높은 빌딩 같은 토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러한 자연환경은 외세의 침략과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방어벽 역할을 하지만 반면에 토산에서 비롯된 황토 먼지가 도시를 덮기도 하고 겨울에는 토산을 덮은 눈이 얼면서 도시 전체를 얼음창고로 만들기도 한다.
토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나린시.
나린 시에는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강이 있다. 중국과의 경계를 이루는 높은 텐샨 산맥의 설산이 녹으면서 형성된 나린강은 강 하류의 국가에게도 생명줄이다. 그러나 지구 열대화는 이곳에도 영향을 미쳤다. 약 5개월 동안 지속하던 이곳 겨울이 3·4개월로 짧아지면서 설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수량도 감소하고 있다. 결국, 인근 국가들은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나린강 상류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함으로써 물 부족과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2024년부터 이곳에 본격적인 댐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인간이 초래한 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작금의 노력이 더 큰 재앙이 아니라 꼬인 매듭을 푸는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설산의 눈이 녹으면서 켈수 호수로 낙하하는 폭포를 만들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높은 산봉우리의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호수가 많다. 그 가운데는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호수도 있는데, ‘켈수’(Kol-Suu, 또는 Kel-Suu)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데다가 중국 국경과 맞닿아 있어 인간의 발길이 드물 수밖에 없다. 나린에서 자동차로 서너 시간 거리에 있는 켈수는 텐샨 산맥 속에 천연보석처럼 숨어 있는 호수다. ‘물이 드나드는 호수’라는 뜻의 이름처럼 이 호수는 특이하게도 호수 바닥 틈새로 물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또 빠져나가다 보니 강설량이 적은 해에는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깝게는 2019년에 그러했다. 따라서 이 아름다운 호수에 가기 전에는 호수가 여전히 물을 품고 있는지를 알아봐야 하고, 미리 행정기관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 후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다행히 호수로 가는 길은 험난하지 않다. 평화로운 산속 넓은 평원을 따라가다 보면 출입 관리를 위한 초소가 나타난다. 이곳을 통과한 후 다시 30여 분을 더 올라가면 산에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 자연적인 물길을 만들며 산 아래 넓은 들판으로 흘러가는 한 폭의 거대한 풍경화와 같은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 계곡을 끼고 드문드문 하얀 유르트들이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디에서도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해발 3000m 고원 위의 넓은 호수 송쿨. 여행객들을 위한 유르트 캠프가 보인다.
산 위 호수를 보려면 이곳 유르트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도보나 말을 타고 산을 올라야 한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채 넓은 자연 속에서 산을 향해 가다 보면 산과 산 사이로 좁은 길이 나타나는데 그 길 고개를 넘자마자 그곳에 거대한 푸른 보석 같은 호수가 눈앞에 나타난다. 도보로는 두어 시간 걸리고 말을 타면 30~40분이면 된다. 대략 해발 3500m 지점이다. 호수는 가장자리에서 보는 것보다 안쪽으로 훨씬 넓다. 모터보트를 타고 30여 분을 둘러 볼 정도의 크기다. 산정상의 눈이 녹으면서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호수로 떨어지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게다가 호수 한가운데 있는 바위산에는 두 개의 자연 동굴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직접 탐험해 볼 수도 있다. 현지어로 ‘곰 동굴’이라는 뜻의 이 동굴은 호수 가운데 있는 바위산 중턱에 있어서 사람의 발 길이 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동굴은 갈색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들의 안식처다. 여름인데도 얼음 덩어리가 쌓여 있는 동굴 안 곳곳에서는 야생동물들의 배설물과 발자국, 그리고 동물 뿔과 이빨이 보인다. 하지만 동굴과는 달리 이 아름다운 호수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빼어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품지 못하는 켈수의 운명은 얼음처럼 차가운 수온과 충분하지 못한 물의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송쿨 호수로 가는 길. ‘32마리의 앵무새’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다.
켈수 아래 유르트에서 하루를 묵은 후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산을 빠져나왔다. 오면서 들렀던 나린을 지나 이제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나린에서 보았던 토산이 어느 정도 멀어지면 어느새 넓은 녹지가 펼쳐진다. 그렇게 초록과 동물들과 더불어 평원을 달리던 자동차는 어느 순간 낮은 관목들과 키 작은 풀이 자라고 있는 거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길은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도로 중 하나로 이어진다. 심하게 굽은 이 산길 도로는 ‘서른두 마리의 앵무새’(32 Parrot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날개를 펼친 서른두 마리의 앵무새를 닮은 듯도 하다. 자동차로 올라가는 내내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혹여 차가 멈춰버리거나 뒤로 구르지는 않을까, 가슴을 조여야 했다. 하지만 무사히 그 여정 끝에서 만난 세상은 한마디로 지상 낙원이었다. 해발 3000m 위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원에는 군데군데 맑은 물이 흐르고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가축이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넓은 초원과 구릉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유르트만이 이곳에 인간이 있음을 보여주는 전부였다.

그러나 힘들게 찾아온 이곳 송쿨에서 정작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넓은 호수 위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거나 자연 속 동물들을 훔쳐보거나 유르트 주변에서 여행객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호숫가를 거닐거나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것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것이 도시에서는 해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래서 세상 사람들이 이곳 송쿨을 찾아오는 모양이다. 이러한 이유로 몇 해 전에는 넘쳐나는 쓰레기로 이곳이 심한 몸살을 앓기도 했다. 다행히 세상의 보물이 쓰레기로 덮이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경각심을 가지면서 송쿨은 다시금 자연 상태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송쿨의 시련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전의 송쿨은 온갖 종류의 물고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 또한 무분별한 낚시로 인해 급기야 물고기의 멸종 위기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결국, 이곳을 낚시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어린 물고기를 방사하는 등의 노력과 함께 생명이 꿈틀거리는 이전 호수로의 재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전처럼 많은 물고기 떼를 구경하기에는 아직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듯하다. 세상의 어떤 것도 누군가를 파괴하면서 아름다울 수도, 평화로울 수도 없다. 별과 달에게 하늘을 양보하며 송쿨 호수 너머로 붉은 해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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