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 가져다준다는 상상 속의 神
- 유물과 문헌 기록 통해 형상 유추
- 기장 등서 행해지던 고사도 다뤄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섣달 그믐이면 부산 기장 어촌마을은 ‘도깨비 모시기’ 고사를 지냈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메밀을 볶아서 마당에 뿌리면, 도깨비가 집안에 들어와 제액초복과 풍요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이러한 풍습은 풍어와 조업 안전을 비는 서해안과 남해안 바닷가 마을 곳곳에서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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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 정관박물관이 특별기획전 ‘신神과 함께-도깨비 모시기’를 개최한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가져온 도깨비 무늬 벽돌(사진) 등 도깨비 문양 유물을 한 자리에 모았다. 최승희 기자 |
부산 기장군 정관박물관이 기장의 옛 풍습 ‘도깨비 모시기’ 속 도깨비를 소환했다. 잘 받들면 복을 주고, 소홀하면 해를 입히기도 하는 상상 속의 신 도깨비를 탐색해보는 특별기획전 ‘신神과 함께-도깨비 모시기’를 개최한다. 유물과 문헌 속 기록을 통해 우리나라 도깨비의 형상을 찾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자리로 마련했다.
전시실은 도깨비 이야기가 숨어 있는 어느 양반집으로 들어가는 듯, 메밀꽃 화병이 놓인 전통 문 형태의 입구로 입장한다. 전시는 ▷만남 ▷형상 ▷공생 ▷섬기기 등 크게 4개 주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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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 입구. 최승희 기자 |
‘만남’은 왜곡된 도깨비의 올바른 형상을 찾는 여정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뿔 달린 도깨비의 형상은 일본의 ‘오니(おに)’에 가깝다. 유래를 따져보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교과서 ‘조선어독본’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여기 수록된 이야기 ‘혹부리 영감’의 삽화에 오니와 닮은 도깨비가 등장하면서 왜곡된 이미지가 굳어졌다. 전시장에는 ‘조선어독본’ 삽화와 ‘월인석보’ ‘신증동국여지승람’ ‘성호사설’ 등 도깨비 기록이 있는 조선시대 서적들을 살펴본다.
2장 ‘형상’에서는 도깨비 문양이 있는 삼국~고려시대 유물을 한 자리에 모았다. 고대에는 도깨비 문양을 권력 또는 벽사(귀신을 물리침)의 의미로 사용했다. 당시 허리띠, 청동방울, 벼루 다리 등에서 천 가지 몸, 만 가지 얼굴의 도깨비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어렵게 가져온 벽돌 ‘산경치도깨비무늬벽돌’ 등 4점에는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이빨, 커다란 체구의 도깨비 전신이 새겨져 있는데, 괴기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이 인상적이다. 삼국~고려시대 도깨비 기와를 모아놓은 코너에선 시대와 나라마다 다른 형태의 문양을 비교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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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공간인 ‘도깨비연구실’. 최승희 기자 |
도깨비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로 전승됐는지 3장 ‘공생’에서 짚어본다.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지배층과 서민은 도깨비를 다르게 인식했다. 유교사상을 근본으로 삼던 지배층은 주술과 기복신앙 형태의 도깨비를 부정적인 존재로, 서민은 재물을 주거나 씨름을 청하는 등 친숙하면서도 삶을 구원해줄 신으로 모셨다. 전시장 안쪽에 설치한 ‘도깨비 연구소’도 이번 전시를 위해 공들인 체험 공간이다. 도깨비의 특성을 쉽고 재미있게 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나만의 도깨비 만들기 ▷도깨비에게 소원 빌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4장 ‘섬기기’에서는 신으로 승격돼 서해안과 남해안 바닷가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도깨비 고사와 부산 기장에서 행해지던 ‘도깨비 모시기’ 고사 등 관련 신앙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현재 대부분 단절됐으며, 유일하게 전승되는 것은 제주도의 ‘영감놀이(제주도 무형문화재 제2호)’ 뿐이다. 제주 영등송별제-영감놀이 영상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풍어와 도깨비불을 주제로 한 실감 영상 부스도 ‘포토 스팟’으로 인기가 많다. 바다 위 도깨비불이 보이는 곳에 그물을 던지면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이야기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작한 실감 영상이다. 상대적으로 부스가 협소한데, 스크린 양옆에 거울을 설치해 공간감을 확장하고 한계점을 보완했다. 반짝이는 바다 위 도깨비불이 떠오르면 바다 속 물고기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화면 가득 올라오는 장면이 환상적이다.
전시는 오는 12월 10일까지 이어지며 월요일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