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선사·고대의 토기(土器)부터 고려·조선 시대의 상류층이 애용한 자기(磁器), 일상생활에서 널리 이용해 온 옹기(甕器) 등 옛사람들이 사용했던 온갖 그릇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는 음식을 먹는 데 사용한 그릇뿐만 아니라 사물을 본뜨거나 특이한 모양으로 만들어 의례나 제사에 사용한 그릇도 있다. 시대에 따라 그릇의 형태나 제작 방법에 차이가 있지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아가리가 좁고 배가 불룩 나온 ‘항아리(壺)’를 널리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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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큰 항아리 대호(大壺).
부산박물관 제공 |
부산박물관의 동래관 선사실에서 고대중세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다 보면 한데 모여있는 삼국시대 큰 항아리(대호·大壺)들을 만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토기 제작 기술이 한층 발달하면서 크기나 부위별 장식을 달리 한 갖가지 형태의 토기 항아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왠지 이 항아리들은 높이 40~100㎝로 큰 크기만 눈에 띌 뿐 빛깔도 칙칙하게 짙은 회색이라 큰 관심 없이 지나 버리기 쉽다.
그렇지만 성인 남성이 양팔을 벌려 안기도 힘든 이 큰 항아리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상상해 본다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큰 항아리는 먼저 작업대 위에서 바닥이 평평한 상태로 점토띠를 쌓아 올려 몸통의 어느 정도까지 만든다. 그런 다음 뒤집어 놓고 바닥 쪽을 잡고 조아서 둥근 바닥으로 만든다. 그래서 항아리 바닥을 보면 살짝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항아리를 똑바로 세워서 몸통 윗부분과 아가리까지 만들면 비로소 항아리 외형이 완성된다.
가마에서 구울 때는 이전의 무른 그릇에 비해 훨씬 고온인 1000~1200℃의 온도로 구워 더욱 단단하고 물이 잘 새지 않는다. 때문에 내용물을 가리지 않아 물이나 술 곡식 소금을 저장하거나 장 젓갈을 숙성하기 위한 용기로 살림살이에 두루 쓸 수 있었다. 실제로 삼국시대 마을 유적의 집자리 한 켠에서는 식수나 각종 식재료를 저장하는 데 사용한 큰 항아리가 몇 개씩 발견된다.
삼국시대 큰 항아리는 오늘날까지 장독, 물독, 쌀독으로 사용되는 옹기로 그 맥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커다란 항아리에는 얼마나 많은 내용물을 채울 수 있을까. 높이 100㎝가 넘는 큰 항아리에는 족히 250ℓ 이상의 식수를 담을 수 있다. 폭염, 폭우가 맹위를 떨쳤던 여름을 지나 어느덧 풍요로운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설렌다. 오늘날보다 더 자연의 변화에 삶이 좌우되었던 옛사람들은 가을을 맞이하며 풍년을 비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한 해 농사를 끝낸 후 마을 곳곳 집집마다 커다란 항아리에 햇곡식이 가득하고 햅쌀로 빚은 송편, 술을 채워 넉넉한 가을날을 맞이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