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집’ 등 바른 캐릭터와 반대
- 조직의 냉혹한 중간 보스 변신
- 어둑하고 스산한 느낌 새로워
- 노개런티 출연… 공동제작 참여
- 어른들 행동 중요 메시지 공감
- 칸 초청돼 레드카펫 밟아 영광
- 작품 기획에 재미 느끼고 있어
눈빛이 확 달라졌다. 드라마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보여준 세련되고 부드러운 표정은 사라지고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무표정한 얼굴과 한층 깊어진 눈빛이 자리했다. 바로 누아르 영화 ‘화란’(개봉 11일)에서 세상의 냉혹함을 너무 일찍 깨달은 중간 보스로 변신한 송중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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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란’에서 세상의 냉혹함을 일찌감치 깨닫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는 냉혹한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 역을 맡은 송중기. 하이지음스튜디오 제공 |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영화다. 지난 5월 제7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송중기는 세상의 냉혹함을 일찌감치 깨닫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는 냉혹한 조직의 보스 치건 역을 맡아 신인배우인 연규 역의 홍사빈과 호흡을 맞췄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중기는 “예전에 ‘화란’과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쉬움이 있었는데, ‘화란’의 시나리오를 보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며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너무 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는 저예산 영화인 ‘화란’이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의 색깔을 유지하길 원해 노개런티로 출연했으며, 공동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계속 ‘송중기, 개런티 안 받았다’는 기사가 나서 지금 대본 주시는 제작사 대표님들이 ‘저기선 안 받고 여기선 받느냐’고 뭐라 하신다(웃음). 이 말 꼭 써달라. 저 개런티 받을 것이다. 많이 받을 것이다”며 웃었다.
영화에 남다른 책임감과 애정을 갖고 있는 송중기에게 구체적으로 ‘화란’에 출연하게 된 과정과 촬영 과정, 그리고 결혼과 득남으로 이어진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운 이야기에 꽂힌 ‘화란’
아무리 누아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해도 노개런티로 출연한다는 것은 어떤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송중기가 해냈다. 또 숨겨진 이야기지만 ‘화란’의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송중기에게 찾아온 것은 아니다. 투자배급사인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관계자와 만나 다른 작품을 거절하다가 우연히 받게 된 것이다. 송중기는 “처음 ‘화란’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마치 영화 ‘똥파리’를 보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 제가 맡은 역할 치건도 좋았고, 작품의 전체적인 색깔이 너무 좋았다”며 “감사하게도 저에게 많은 작품 제안을 주시지만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었다. 흥행 공식에 짜인 작품을 유독 많이 봤다. 그래서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 신선한 작품을 만난 것이다. 어둑하고 눅눅하고 스산한 느낌이 제게는 새로웠다”고 타이밍 좋게 찾아온 ‘화란’에 대해 설명했다.
누아르 스타일도 마음에 들었지만 영화에 담긴 메시지도 송중기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어른들이 똑바로 잘 살아야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사회적 위치가 높아질수록 더 비겁해지고 책임감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래서는 안 되는 거다. 상식적인 이야기 아닌가”라고 말했다. 부모, 혹은 지도층 인사들이 바로 서야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메시지가 송중기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리고 송중기의 선택이 옳았음을 칸영화제가 증명해 줬다. 재능 있는 젊은 감독을 발굴하고 독창성과 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소개하는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 송중기는 처음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는 “칸영화제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은 아니지만 영광이지 않나. 송강호 선배님처럼 여러 번 칸에 가봤으면 모르겠는데 저는 처음이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우리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게 해 줬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얼굴 상처의 중간 보스로 변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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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 영화 ‘화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
하얗고 신뢰감 가는 훈훈한 외모를 지닌 송중기는 귀공자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 그래서 세련되면서 자상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하지만 ‘화란’에서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거친 모습으로 변신했다.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치건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피부 톤을 어둡게 만들었고, 왼쪽 뺨의 흐릿한 생채기를 더 도드라지게 했다. 송중기는 “얼굴에 어릴 때 까불다가 생긴 상처가 남아있다. 다른 작품에서는 그 상처를 커버했다면 이번에는 분장팀에서 음영을 살려 오히려 드러냈다. 또 귀가 찢어진 설정도 있어서 특수분장을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에 만족해했다. 그리고 “치건은 어린 시절 가정학대로 낚싯바늘에 귀가 찢어졌고, 연규는 화분의 나뭇가지에 찔린 상처가 눈 부근에 있다. 방향도 각각 오른쪽, 왼쪽으로 보이길 원했다. 영화가 대사도 많이 없고, 함축적으로 보인 게 있어서 친절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비주얼적인 걸로 해서 보이길 바랐다”며 치건이 연규에게 동정심, 혹은 책임감을 갖게 되는 설정으로 상처가 사용됐음을 설명했다.
극 중 치건과 연규의 관계가 촬영장에서는 베테랑 배우 송중기와 신인배우 홍사빈의 관계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화란’에서는 홍사빈 외에도 연규의 새아버지 딸 하얀 역으로 가수 비비로 더욱 유명한 김형서가 출연했는데, 송중기가 영화는 초짜인 이들을 이끌어야 했다. 그는 “저는 지금 (배우로서) 중간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후배들도 생겼으니까 저한테 기댈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저도 예전에 선배님들한테 기대했던 것처럼 말이다”며 책임감을 전했다. 이어 “제가 아직도 막내인 현장도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면 이성민이 형님한테 푹 안겨서 (연기)했다. 물론 제가 그 형님의 절대 경지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제가 물리적으로는 선배니까 후배들이 기댈 수 있었다면 감사한 일이다”며 웃었다.
홍사빈은 첫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신인다운 풋풋함과 주연다운 스크린 장악력을 동시에 보여주며 충무로 샛별로 단숨에 자리 잡았다. 송중기는 홍사빈에 대해 “큰 주인공 역할을 처음 하는 친구고, 제가 그 위치에서 느끼는 부담감을 알기 때문에 많이 도와주려고 했는데 알아서 잘하더라(웃음)”며 “사빈 씨가 황정민 형님 회사에 있는 배우인데, 형님한테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았다. 거긴 까불면 바로 혼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
요즘 송중기는 행복하다. 그는 지난 1월 영국 배우 출신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결혼을 발표했고, 6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득남 소식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케이티에 대한 루머가 돌기도 했다. 송중기는 “어떤 곳에선 소설을 쓰고 있더라.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했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남편으로서 화가 많이 났다”고 말했다. ‘화내지 말자’고 하는 아내의 현명한 내조가 큰 힘이 됐음을 전했다. 그리고 “지금은 감사하게 아기가 태어나서 착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태어나니까 모든 게 감사하더라”며 인터뷰 도중 스마트폰을 꺼내 100일 된 아들의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화란’ 홍보차 귀국 전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족과 지냈던 송중기는 “해외에서 지내면서 생각나는 게 있어서 스마트폰에 두 줄짜리로 써놓은 기획이 있다. 며칠 전 친한 영화 관계자분한테 ‘이런 거 어떠냐?’고 처음 물어보기도 했다”며 “다양한 작품을 기획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편인 것 같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작품,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 주는 편안함 속에 새로운 도전을 갈구하는 배우 송중기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