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드림씨어터서 내달 19일까지
- K라이선스 10주년 10년만의 감동
지난 22일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관람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엄청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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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 한 장면.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의 격변기를 그린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창조됐다. 사진은 2015년 한국어 공연 당시 모습.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
설도권 드림씨어터 대표는 공연 책자에 쓴 인사말에서 “‘레미제라블 한국 라이선스’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대여정의 첫 도시이자 10년 만에 성사된 부산 공연을 드림씨어터에서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꼼꼼하고 자세하며 방대하고 다채롭다. 미국 출판사 펭귄그룹이 낸 1권짜리 무삭제 영문 번역본 페이퍼벡은 1463쪽이다. 한국어판 완역본은 대개 5, 6 권으로 이뤄졌다. 그 속에 전쟁사·역사·풍속·법·사회·사상·사랑·음모·배신·혁명이 다 들어 있다. 혀를 내두를 만큼 다양한 요소를 버무리고 충돌시키며 불세출의 휴먼 드라마, 혁명 이야기, 사랑의 시편을 빚어낸 빅토르 위고의 힘은 놀랍다.
원작에 이토록 많은 사건·인물·배경이 나오기 때문일까.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었을 때 뮤지컬 ‘레미제라블’보다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의 대립이 그렇게까지, 작품 전체를 ‘원톱’으로 압도할 만큼 선이 굵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대한 이 소설 속에 자베르가 나오는 분량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985년 런던에서 처음 선보인 뒤 40년 가까운 세월 세상을 집어삼켰다. 1995년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뮤지컬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공연 영상을 담은 DVD는 이 뮤지컬이 세계를 휩쓴 매력과 괴력을 잘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이 DVD를 구매했다. 역대 최고 맞수가 아닐까 싶은 콤 윌킨슨(장발장)-필립 퀘스트(자베르)는 이 공연에서 구도를 장발장-자베르의 대결(Confrontation)로 단순하게 압축하며 작품에 극강의 흡인력, 최강의 예술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이 공연에서 필립 퀘스트가 부르는 ‘Stars‘(별), 콤 윌킨슨이 노래하는 ’Who Am I’(나는 누군가) 등은 정신성·숭고미·이념미를 느끼게 한다. 뮤지컬이 대중성을 유지하면서 한 단계 도약해 버리게 한다. 이 힘이 작품 전체를 장악한다.
그렇다면 한국 배우·오케스트라·제작진이 만드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 이날 드림씨어터에서 본 공연은 바로 그런 힘과 특징을 무대에서 강렬하게 구현했다. 상세히 뜯어보지 않고 직감만으로도 탁월했던 의상·무대·음악을 접하며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 캐머런 매킨토시가 이끄는 원천 뮤지컬과 무척 긴밀한 연계 속에 진행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어 공연만의 에너지와 개성을 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큰 틀에서 보아, 걸판짐·대범함·거침없음 같은 특질을 이 공연에서 느꼈다. 테나르디에 부부(이날은 남편 임기홍, 아내 김영주)의 여관에서 펼치는 ‘이 집 주인장’(Master of the House) 장면부터 혁명의 바리케이드를 준비하며 청년·시민이 부르는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까지 큰 장면에서 출연진은 걸림 없이 대범하게 에너지를 발산하고, 이는 객석에 전해진다.
실은 이런 강한 에너지는 설렁설렁과는 정반대인, 치밀·촘촘·치열하게 빚은 앙상블에서 나온다. 흐트러짐 없는 앙상블이 공연을 지배했다. 총알이 객석으로 쓩쓩 날아들어 귓전을 스쳐 가는 듯한 음향이나 무대미술의 사실성·간결함도 기억에 선명하다.
장발장(최재림)과 자베르(김우형)는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대결과 추적은 ‘콤 윌킨슨-필립 퀘스트’ 버전과 비교하면 존재론이나 내면세계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기보다 선 굵게 극 전개의 구도를 잡아주는 인상을 받았다. 자베르의 ‘별’(Stars)이라는 노래를 필립 퀘스트가 종교적 숭고미까지 느껴지게 불렀고,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러셀 크로우는 다짐의 독백처럼 표현했다면 김우형은 우렁찬 느낌을 가미했다. 최재림은 끝까지 극의 중심을 잡는다. 관객이 좀 더 선명하게 내용을 느낄 구도가 그렇게 짜여 갔다. 에포닌(김수하)의 존재감이 매우 크고 선명했다. 이는 코제트(류인아)-마리우스(김경록)의 앙상블을 더 생기 있게 했다. 오는 11월 19일까지 공연(월요일 공연 없음)하며 관람료는 9만~18만 원이다. 이날 객석은 꽉 찼고 기립박수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