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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슬픈 노래도, 비판적 야류도 신명나게…부산의 흥이로구나

상지건축과 함께하는 오 부산-유산과 미래 <5> 다양한 장르서 만나는 ‘흥’

  • 심상교 부산교대 국어교육과 교수·희곡작가
  •  |   입력 : 2023-10-29 19:01:1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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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삼월 봄에 취한 동래야류 양반
- 말채 휘두르며 양반 꼬집는 하인
- 둘 다 흥에 취해 덩실덩실 춤 춰
- ‘문둥과장’의 서러운 ‘천형’도
- 고난 극복하는 풍물로 승화시켜

- 그리움의 노래인 ‘부산갈매기’
- 사직구장서 함께 부르며 신나게
- 부산의 흥, 아픔과 연대가 있다

“이때가 어느 땐고, 때마침 삼춘이라. 꽃은 피어 만발하고 잎은 피어 너울 짓고 노고지리 오십 길은 뛰어 오르고, 강가의 말은 슬피 우네. 초당에 앉은 양반, 공연히 걱정되어 마누라 불러 장롱을 단속하고, 훈장 불러 자녀를 단속하네. 일호주 앞에 놓고 친구들과 한담하러 주막으로 나가려니 그 마음이 어떨소냐.”
동래야류의 양반 과장에서 말뚝이(한가운데)와 양반들이 흥이 오른 가운데 상대방을 타박하는 장면이다. 심상교 제공
동래야류의 원양반이 웅박캥캥 음악과 춤이 흐드러질 때 흥에 겨운 자신의 심중을 드러낸 대사다. 꽃은 만발해 있고, 미물인 노고지리와 말도 봄을 느끼는 춘삼월에 인간인들 어찌 흥을 느끼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흥을 좇기만 하면 아니 되기에 먼저 가족부터 단속한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흥을 못 이겨 친구들께 연락하여 술 한 병을 나누려니 어찌 설렘이 돋아나지 않겠는가. 자신은 ‘써핑하듯’ 흥을 타고 넘으면서 가족은 흥에 치일까 걱정하는 양반의 이중성도 나타나지만 천지만물의 약동과 세상 기운을 담은 흥의 긍정성이 발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산의 흥은 무엇보다 동래야류 말뚝이 춤에서 나타난다. 말뚝이 춤은 말뚝이 혼자의 춤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양반들과의 조화로운 춤을 통해 완성된다. 말뚝이는 말을 끌고 가는 하인을 지칭한다. 하인 말뚝이가 양반들과 조화로운 춤을 출 때 춤의 예술적 흥이 돋아난다.

조화롭게 흘러가는 춤의 궤적에서, 그리고 올리는 듯 내리고 내리는 듯 올리는 손발의 동적 곡선에서 부산의 흥은 뚝뚝 떨어진다.

부산의 흥은 말뚝이의 말채에서도 휘둥그레 솟아오른다. 말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말을 타박하는 말채가 필요하다. 동래야류에서 말뚝이는 말채를 휘두르며 말이 아닌 흥을 견인한다. 말뚝이가 팔방을 가리키며 말채를 휘두를 때, 말채 끝에서는 흥과 함께 양반을 비판하는 풍자의 고소함도 느껴진다. 풍자와 흥이 동발하는 말채에서 부산의 흥은 이성의 간섭도 용납한다. 뿐만 아니라 금정산을 타고 내린 맑은 흥이 따듯한 온천수의 향기를 타고 부산 여기저기로 퍼져가도록 말채는 허공에서 흥의 춤을 추는 것이다.

■“저 양반 거동 보소”

동래야류는 부산 동래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으로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연행되기에 야류라 지칭한다. 인간의 흥과 신명을 예술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 고전연극이다. 흥과 신명을 담고 있는 가면극에는 수영야류도 있다.

“저놈의 양반 거동 보소 저놈의 양반 거동 보소 갓을 벗어 등짐하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비틀비틀. 인적 없는 산에, 술 취해 누웠다가 살구꽃 핀 마을을 다시 찾아보네. 수양산 깊은 골로 가만히 슬슬 들어가니 버드나무 잎사귀를 한 움큼 주루룩 훑어다가 깊고 깊은 물에 여기도 풍덩 저기도 풍덩.”

수영야류의 수양반이 보름달이 뜬 봄날의 흥을 표현한 대사다. 수양반은 흥에 취하고 신명에 풍덩댄다. 춘월만정한 보름날에 터질 듯 부푼 보름달처럼 수양반은 흥에 올라탄 듯 두둥실 떠오른다. 양반이 아니면 번듯한 갓을 쓸 수도 없었기에 갓은 양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 갓을 비껴 쓰고 비틀대는 양반의 모습에서 흥에 겨운 봄날의 정취가 아지랑이처럼 퍼져간다. 아지랑이의 파장은 퍼질수록 거칠어져 흥을 여기저기로 밀어 올린다. 흥이라는 쪽배는 신명의 격랑 속에서 에로틱한 상상을 곁들이며 풍덩댄다.

흥은 이처럼 약한 파동으로 시작하여 점점 크고 거친 파장으로 나아간다. 아련한 꽃향기에 가슴이 열리며 어깨가 들썩이더니 어느새 팔은 활갯짓하고 발은 깨금질한다. 부산의 흥은 대체로 이렇다. 대체로 상승하며 폭발을 준비하는 기운이 흥과 가깝다 할 것이다.

■하강 속에도 흥은 있다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부산 팬들. 국제신문 DB
그런데 부산의 흥은 하강 속에도 존재한다. 하강 속의 흥은 흥을 놓기 싫어하는 부산사람의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동백섬을 비롯한 모든 부산에, 그리고 세상천지에 꽃 피는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는 갈매기가 슬피 운다. 갈매기는 형과 이별하여 쓸쓸히 방황하는 내 마음이다. 방황하는 마음은 목이 메도록 거리를 헤매지만 결국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온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에는 이별의 슬픔이 녹아있다. 하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슬프게 불러지지 않는다. 애린을 느끼기보다 털고 일어선 마음의 흥이 드러난 노래다. 이 노래는 가사 내용을 느끼며 부르는 노래가 아닌 듯하다. 그저 부산항, 형제, 돌아왔다 등의 단어만 떠올린 채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래로 보인다. 흥을 놓기 싫어하는 부산 사람의 마음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노래인 것이다.

■비판정신과 미감

부산에는 애국가가 2개다. 부산에서는 ‘부산갈매기’도 애국가다. 적어도 롯데 야구가 벌어지는 곳에서 ‘부산갈매기’는 애국가나 다름없다. 부산 사람들은 ‘부산갈매기’도 부산의 흥에 얹혀 부른다. 가사 내용은 실연의 아픔이나 그리움의 정서로 가득한데 노래를 부를 때는 이런 느낌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흥에 겨워, 그리고 차오르는 신명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이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통곡하듯 목 놓아 외친다. 이 순간 ‘부산갈매기’는 노래가 아니라 흥의 끓어오름이다.

가사에는 엷고 아련한 파장이 흐르는데 노래가 된 다음에는 흥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이 흥을 함께 해야 한다. 혼자 느끼는 흥보다 함께하는 마음속으로 어깨를 걸고 함께 흥겨워해야 부산의 흥인 것이다. 처음에는 한스러운 슬픔을 가졌으나 삶에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고 타자와 어깨 걸고 새로운 흥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동래야류’ 문둥과장에도 있다. 흥을 통해 결국 고난을 극복하는 부산의 정서가 이 문둥과장에 반영되어 있다.

문둥과장 처음에는, 문둥이 한 명이 등장하여 천형에 걸린 서러움의 춤을 춘다. 잠시 후, 다른 한 명의 문둥이가 등장하고 바닥에 놓여진 소고도 발견한 다음에는 흥이 일기 시작한다. 동래야류에서 문둥이는 인간을 반추하는 현기증 같은 존재가 되었다. 문둥과장은 가면극이 가진 비판정신에 존재 통찰의 미학적 감각을 덧붙였다. 그래서 가면극이 예술작품으로 완성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흥이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작용하는 것이다. 문둥광대가 북춤을 출 때는 왼손에 북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 북채를 든다.

이 춤의 여러 동작은 슬픔이나 기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한 동작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며 우는 모습 등이 표현된다. 그러한 점에서 문둥광대의 춤은 춤이나 어떤 움직임이라기보다 선명한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이다. 문둥광대는 천형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감아쥔 채 춤을 춘다. 이는 인간 삶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다. 고통은 소고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단계로 들어간다. 소고가 흥을 가져다주었기에 이전의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문둥광대의 춤사위는 활달해지고 다리의 놀림도 활기차진다. 문둥광대의 춤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상징은 흥의 절대성이다. 이를 통해서는 선조들의 삶에서 신명을 내기 위해 매개되는 북, 그와 동일한 의미로 상징되고 있는 풍물의 중요성도 부각된다. 문둥광대의 춤에서 소고가 보여주는 흥은 삶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개안의 매개물이며 고통을 잊고 기쁨을 누리게 하는 매개물이다.

■물결은 파도가 되고

이처럼 부산의 흥은 서서히 퍼져가는 물결처럼 시작되어 결국 거친 파도가 되어 삼키려는 듯 달려든다. 이런 흥은 영남지역의 대표적 민요인 옹헤야, 쾌지나칭칭나네 등이 표현하는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로부터 쌓인 흥들이 부산의 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궂은 비 내리는 날 도라지 위스키 한 잔도,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고는 그 아픔을 웃음에 묻는 넉넉함도 모두 부산의 흥일 것이다.

※ 공동기획 : 국제신문, 상지건축

*‘오! 부산’ 강연 일정 blog.naver.com/osangj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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