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관오리로 지목돼 파직한 권준
- 류성룡 상소로 장군 조방장 복귀
- 전쟁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 판단
- 장군, 동지·영공 등 예 갖춰 대해
- 충청수사 타는 대형 판옥선에 불
- 수사 포함 군관 격군 140명 숨져
- 실화로 화약고에 화재 번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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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회 4월 13일 자 일기에 이순신 장군이 장계와 편지를 올려보낸 기록이 나온다. 사진은 ‘임진장초’로 임진왜란 때 장군께서 조정에 올린 장계를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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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6일[4월25일] 비.
사도첨사 김완이 들어왔다. 그 편에 들으니, 전 충청수사 입부 이순신이 군량미 200여 섬 때문에 조도어사 강첨에게 붙잡혀 심문당했다고 했다. 또 새로 부임한 충청수사 이계정은 그가 탄 배에서 불이 났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동지(同知) 권준이 본영에 왔다고 했다.
※언경 권준은 순천부사로 있다가 탐관오리로 지목되어 파직된다.(갑오년 10월 25일 일기 참조) 이순신은 이를 두고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그 후 류성룡의 상소로 이순신의 조방장으로 복귀하는데(아마도 이순신이 류성룡에게 권준이 전쟁에 꼭 필요함을 주청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그를 특히 동지(지사의 보좌역), 영공 등으로 예를 갖춰 불렀다. 조방장 권준은 1595(을미)년 6월 배설이 체포되자 경상수사로 승진한다.(을미년 6월 13일 일기 참조)
3월17일[4월26일]
비가 그치는 듯하다. 아들 면이 허주, 박인영 등과 함께 돌아갔다. 오늘 군량을 계산하여 딱지를 붙였다. 충청우후(원유남)가 달려와 보고하는데, 충청수사 이계정이 배에 불이 나서 물에 빠져 죽었으며, 군관과 격군 140여 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견내량의 복병한 곳에서 온 항왜 심안은이(沈安隱已)를 문초한 결과를 보고했다. 그 내용은 그(심안은이)는 본시 영등포에 주둔했던 왜군이고, 그의 장수 심안돈(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이 자기 아들(시마즈 다다츠네)을 대신 두고 가까운 시일 내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휘관이 탑승하는 대형 판옥선의 탑승 인원은 160명 내외인데 그날 140여 명이 타 죽었다는 것은 실화로 인해 화약고로 불이 급격히 번졌기 때문에 승선군인 전부가 미쳐 피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월18일[4월27일] 맑음.
권언경과 아우 여필, 조카 봉, 이수원 등이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천만다행이다.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3월19일[4월28일] 맑음.
권준 영공과 함께 활을 쏘았다.
3월20일[4월29일]
비가 계속해 내렸다. 식후 우수사에게로 가던 도중에 수사 배설을 만나 배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다. 그는 밀포(密浦, 한산도 두억리 연안으로 추정키도 하고, 남해현에 속한 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의 둔전 만들 곳을 살펴보러 간다고 했다. 그 길로 우수사에게로 가서 몹시 취해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3월21일[4월30일] 맑음.
늦게 아우 여필, 조카 봉, 이수원이 돌아갔다. 나주반자(판관)와 우후(이몽구)가 와서 만났다. 정오에 박 조방장에게로 가서 바둑을 두었다.
3월22일[5월1일]
동풍이 크게 불며 아침에는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세 조방장(권준 박종남 신호)과 함께 활을 쏘았다. 우수사도 와서 같이 쏘았다. 날이 저물어서야 파하고 헤어졌다.
3월23일[5월2일] 맑음.
아침식사를 한 뒤에 세 조방장 및 우후를 데리고 걸어서 한산도 앞산 봉우리에 올랐다. 삼면의 전망이 막힌 데가 없고 북쪽길은 훤히 트여 있었다. 활터를 차릴 작정으로 터전을 넓게 닦아 놓고, 거기에 앉아 돌아올 것을 잊고 종일토록 즐겼다.
3월24일[5월3일]
흐렸으나 바람은 없었다. 공문을 처결했다. 늦게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이억기는 공무를 볼 대청을 고쳐 짓는 데 대해 탐탁찮게 생각하고 있다니 매우 놀랍다.
3월25일[5월4일]
종일 비가 왔다. 동지 권준, 우후, 남도포만호, 나주판관이 와서 만났다. 영광군수도 왔다. 권준과 바둑을 두었는데 권준이 이겼다. 저녁에 몸이 몹시 불편했는데, 닭이 울어서야 열이 조금 내리고 땀도 흐르지 않았다.
3월26일[5월5일] 맑음.
영광군수가 나갔다. 늦게 조방장 신호, 박종남, 우후와 함께 활 15순을 쏘았다. 저녁에 수사 배설 이운룡 안위가 와서 새로 부임한 방백(경상우도 관찰사 서성)에게 신고하기 위해 사량(통영시 사량면)으로 간다고 고했다. 밤 10시쯤에 동쪽이 어둡다가 곧 도로 밝아지니 무슨 조짐인지 모르겠다.
3월27일[5월6일] 맑음.
식후에 우수사가 와서 종일 활을 쏘았다. 어두울 무렵 조방장 박종남에게로 가서 발포만호, 사도첨사, 녹도만호를 불러 같이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표마(갈기가 은빛나는 말)와 종 금이가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3월28일[5월7일] 맑음.
활 10순을 쏘았다. 저녁나절에 사도첨사가 와서 보고하기를, 각 포구의 병부(군대를 동원할 때 쓰는 나무패)를 순찰사의 공문에 따라 각 포구에 직접 나누어 주었다고 하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3월29일[5월8일] 맑음.
식후에 두 조방장 및 이운룡 조계종과 함께 활 23순을 쏘았다. 수사 배설이 순찰사(서성)의 처소에서 돌아오고, 미조항첨사도 진에 왔다.
을미년(1595년) 4월
탐망군으로 하여금 적의 동태를 예의주시토록 하고 적의 출몰을 알리면 한산진에서 즉각 출동한다. 상황에 따라 이순신이 직접 출동하기도 하고 부하 장수들을 출동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순신의 군대가 온다 하면 적은 거의 도주하거나 숨어 버리므로 실제 싸움으로 나가는 예는 별로 없었다. 이달도 그러했다. 지난달 활터를 새로 조성한 데 이어 이달에는 대청도 고쳐 새로 짓는다. 준법을 엄정히 시행해 해이해져가는 군기를 확립해간 것은 다른 달과 같다.
4월1일[5월9일]
맑았으나 바람이 크게 불었다. 남원 유생 김굉이 수군에 관한 일로 진중에 왔다고 하기에 그와 함께 이야기했다.
4월2일[5월10일] 맑음.
종일 공무를 보았다.
4월3일[5월11일] 맑음.
세 조방장이 우수영의 진으로 가고, 나는 사도첨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대청의 상량(上樑)을 하고, 도리(기둥과 기둥 위에 얹어 서까래를 받치는 나무)를 올렸다.
4월4일[5월12일] 맑음.
아침에 경상수사(배설)가 활을 쏘자고 청하므로 권·박 두 조방장과 함께 배를 같이 타고 경상수사에게 갔더니, 전라수사(이억기)가 먼저 와 있었다. 같이 활을 쏘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4월5일[5월13일] 맑음.
선전관 이찬이 임금의 비밀 유지(有旨)를 가지고 진에 이르렀다.
4월6일[5월14일]
가랑비가 종일 왔다. 동지 권준과 함께 이야기했다.
4월7일[5월15일] 맑음.
저물녘에 바다로 내려가 어둘무렵 견내량에 이르렀고 거기서 그대로 잤다. 선전관(이찬)이 돌아갔다.
4월8일[5월16일]
날은 맑으나 동풍이 세게 불었다. 왜적들이 밤에 도망갔다하므로 들어가 치지 않았다. 늦게 침도(거제시 둔덕면 술역리의 방화도)에 이르러 우수사(이억기), 경상수사 배설과 함께 활을 쏘았다. 여러 장수들도 모두 와서 참여했다. 저녁에 한산 본진으로 돌아왔다.
4월9일[5월17일] 맑음.
조방장 박종남과 함께 활을 쏘았다.
4월10일[5월18일] 맑음.
구화역(仇化驛:통영시 광도면 노산리)의 역졸이 와서 “적선 3척이 또 역앞 바다에 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중위장들(성윤문 김완 이응표)에게 각각 5척씩 배를 거느리고 견내량으로 달려가서 형세를 보아 무찌르게 했다.
4월11일[5월19일] 맑음
우수사가 보러 와서 함께 활을 쏘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정여홍이 들어왔다. 또 변존서의 편지를 받았는데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한다. 기쁘다.
4월12일[5월20일] 맑음.
장계에 대한 회답 18통과 영의정(류성룡), 우의정(정탁)의 편지와 자임(子任:李軸) 영공의 회답 편지가 왔다. 군량을 독촉할 일로 아병(牙兵:군사의 일종) 양응원을 순천 광양으로, 배승련을 광주 나주로, 송의련을 흥양 보성으로, 김충의를 구례 곡성으로 정하여 보냈다. 삼도의 중위장들(성윤문 김완 이응표)이 견내량에서 돌아와 적들이 물러갔다고 보고했다. 경상수사 배설은 밀포로 나갔다.
4월13일[5월21일]
흐리고 비가 내렸다. 세 조방장이 모두 왔다. 장계와 편지 네 통을 봉하여 거제군관 편에 올려보냈다. 저녁에 고성현령 조응도가 와서 왜적의 일을 말하고, 또 “거제에 있는 왜적이 웅천에 있는 적에게 응원을 청하여 야간에 습격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비록 믿을만하지는 않으나 그럴 염려가 없지도 않다. 대청의 공사를 마쳤다.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