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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받아’들이는 바다 도시…서울 좇다간 독창성 잃어

상지건축과 함께하는 오 부산-유산과 미래 <7> 문화의 기수역(汽水域) 부산

  •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사회학자
  •  |   입력 : 2023-11-20 19:25:2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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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 기질 품은 동래·수영야류
- 동아대 앞 전국 최초의 노래방
- 독립영화·음악·미술 등의 실험
- 모두 부산 문화 독특함 드러내

- 민물·바닷물 만나는 기수역처럼
- 다양한 이질적 문화 받아들이며
- 새로운 ‘혼종’ 만들어내는 기질
- 그게 바로 ‘부산다움’의 힘이다

부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항구도시다. 당연히 어떤 도시보다도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문화를 자랑한다. 날 것의 생기와 유연성, 건강한 혼종성과 잡종성의 힘찬 DNA가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 곳곳에서 꿈틀댄다.

사실, 유유상종은 문화적 관점에서는 독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 최고의 도시들이 그렇게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섞이면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에 한 기자는, ‘영국 사람이 맨체스터를, 미국 사람이 뉴욕을, 일본 사람이 오사카를 사랑하듯 조선인은 부산을 사랑한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는데 (‘부산에서’, 동아일보 1920년 5월 3일) 오늘날 부산은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에 사랑받고 있다.

이런 부산의 매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부산이 그 이름처럼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뒤섞어 걸쭉하게 끓여내는 거대한 가마솥[釜]이기 때문 아닐까. 부산이 ‘문화의 기수역(汽水域)’이기 때문이 아닐까. 기수역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섞이는 곳으로 염분의 농도가 다양한 만큼 생태 환경도 풍요롭고 그래서 과학자에게는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자연에서 기수역의 종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도시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이야말로 도시의 힘이고 맷집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위인들이 꿈꾸었을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도 이질적인 것들이 스스럼없이 만나 서로 소통하며 마침내 건강한 혼종성의 지혜로 함께 공존하는 기수역 같은 세계였을 테다.
부산의 구헌주 그래피티 작가가 2012년 부산 광남초등학교 앞에 그린 작품 ‘자이언트 키드’. 장현정 제공
■콜라주

프루스트에게 마들렌 한 조각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있다. 그 냄새를 맡으면 시도 때도 없이 문득 어린 시절의 광안리가 떠올라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그 추억 속 부산의 풍경 속에는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약간은 삐딱하고 반항적이며 그래서 오히려 새롭고 대담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부산다운’ 것들이 많다.

부산은 한반도 동남쪽 끝이라는 그 지정학적 위치만으로도 역사 속에서 늘 중앙 권력에 반항적인 곳이었다. 한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왕이 바뀌든 말든 사실 부산에서는 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세계관이나 감수성도 달랐기에 오히려 부산만의 문화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부산은 새 시대의 최전선, 아방가르드의 도시다.

어린 시절이던 1980년대만 떠올려 봐도 아직 해외여행 자율화 전이어서 아무나 외국에 드나들 수 없었던 시기에 부산에서는 배 타는 사람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쉽게 일본 문화를 비롯한 외국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바닷가 웬만한 집에서는 특별한 장치 없이도 일본 방송 전파가 잡혔고 당시 방송국 개편 시기가 되면 지상파 PD들이 부산 호텔에 장기 투숙하며 일본 방송들을 ‘우라까이’(베껴 쓰기)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1990년대에도 노래방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와 유행이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즉, 부산 문화는 특별히 공을 들여 세련되거나 권위나 전통을 갖춘 문화라기보다는 솔직하고 가식 없이 직관적이며 일상적이고 서민적이며 시원시원하다. 됐나? 물으면, 됐다! 답하는 문화랄까. 필요하면 갖다 쓰는 잡탕 문화이고, 모자이크 문화이며, 여러 문화를 여기저기 풀로 붙인 것 같은 콜라주(collage) 문화이기도 하다.
부산의 기수역 가운데 하나인 수영강의 친수공간.
■부산에 가면

부산의 이런 문화적 유산과 특징은 잠깐만 일별해봐도 알 수 있다. 부산의 국보급 무형문화재 다섯이 모두 변방과 저항의 기질을 품고 있는데 동래야류, 수영야류, 대금산조, 좌수영어방놀이, 동해안별신굿이 그 주인공들이다. 뿐만 아니라 유배문학의 원류로 꼽히는 고려가요 정과정곡(鄭瓜亭曲)도 수영강변에서 나왔다.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바다를 닮은 부산 특유의 개방성과 포용성은 일찍이 조선 초기 부산포 왜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해방 이후 동포들이 귀국할 때 부두로 나가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해준 것도 부산이었고,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기에 전국 어디서든 힘든 사람들이 찾아오면 가리지 않고 품어준 것도 부산이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이 평화롭게 공존해 온 저력은 영도만 가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그 작은 동네 안에 이북마을도 있고 제주 골목도 있다. 전쟁 통에만 피란 온 게 아니라 이후로도 언제든 먹고 살기 힘들 때, 외로울 때, 죽고 싶을 때, 인생이라는 전쟁에서 상처 입었을 때 사람들은 부산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들을 피해 향하는 곳조차 부산이다.

부산은 그런 도시였다. 죽을 것처럼 힘들 때, 재난과 파국과 참사와 비극 속에서도, 부산에 가면 왠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만 같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저 짠 내 나는 바다가 꼬옥 안아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길을 내며 나아가다

국가무형문화재 수영야류 한 장면.
부산은 국내 문화지형에서 아주 작은 도시들이나 농촌들과 거대한 서울 사이에서 굉장히 독특하고 중요한 위치를 점해 왔다. 자유롭고 비주류적인 감수성과 전통으로 늘 새로운 문화를 선도해 오기도 했다.

1958년 한국 최초의 영화평론가협회가 만들어진 이후 1996년에는 이제는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시작됐고 2014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가 되었다. 또 부산은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로컬 씬이었으며 한국 대중문화의 창구이기도 했다. 1970년대 말부터 여러 가요제를 통해 부산의 대학생들이 전국적 주목을 받았고 1980~90년대에는 민중가요의 선도적 도시였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헤비메탈이나 인디음악과 같은 비주류음악의 메카로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

뿐만아니라 독립영화, 용두산 비보이, 금정구 똥다리의 그라피티와 부산대 앞 청년문화, ‘보일라’와 ‘안녕광안리’ 등 독립잡지와 대안공간 반디 같은 미술 활동 등은 부산 문화의 다양성과 실험적 특징을 보여주며 1991년 동아대 앞에 생긴 한국 최초의 노래방은 우리 여가문화의 판도를 흔들어놓았다.

부산 문화의 독특한 위상은 그 고유성에 있다. 그래서 자신감 없이 남들 바라볼 때, 특히 서울 따라 할 때 부산은 가장 멋없어진다. 귤이 회수를 건너서 탱자가 되는 꼴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나는 바닷가 사람과 육지 사람의 세계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육지에서는 땅의 소유가 너무 중요했기에 명료하게 선을 긋고 여기서부터는 내 땅, 저기까지는 네 땅 하는 방식의 ‘선 긋기 [kritik]’가 중요했다면 바다에서는 다르다.

바닷가 도시의 세계관은 차라리 직관적이고 비합리적인 예술의 영역과 더 어울린다. 육지에서는 길을 따라 움직이지만, 바다에서 배는 길을 내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먼저 지나간 뒤에야 길이 생긴다는 건 근사한 일인데, 바로 거기에 부산의 힘이 있다.

※ 공동기획 : 국제신문, 상지건축

*‘오! 부산’ 강연 일정 blog.naver.com/osangj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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