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주 문학평론가가 정혜경 소설집 ‘개미와 불개미’(전망 펴냄·사진)에 쓴 작품 해설 ‘그들이 당도한 거처’의 한 대목부터 읽어보자. “그렇기에 작가의 개입으로나마 그들은 벌을 받는다. ‘검은 현’에서 K의 부모가 돈에 눈이 멀어 결국은 자식도, 건강도, 돈도 잃게 되었다는 서술이 단적인 예이다(‘주인 없는 집’의 검사장 출신 4선 국회의원이 결국 살해당해 생을 마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 다니며, 극악무도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정혜경 소설가는 그런 모습들을 핍진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벌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작가 정혜경이 최근 펴낸 새 소설집 ‘개미와 불개미’의 특징을 잘 간추린 표현으로 다가왔다. 책에 실은 단편소설 7편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번 작품집에서 거대하고 견고하며 잔인해 보이던 ‘갑’에 대한 응보 또는 벌이 눈길을 끈다.

정혜경의 단편소설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타협이나 양보는 없다. 작가 정혜경은 정혜경의 길을 간다. 그 틀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이러하다. 세상의 벽은 견고하고, 많은 것을 가진 지배자는 무자비하다. 가진 것 없고 뺏긴 약자는 잔인해 보일 만큼 힘겨운 곤경 속으로 내몰린다.

이런 틀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인간다운 가치가 끝내 빛난다는 결말을 향해 가거나, 악인들이 벌이는 탐욕 행각의 허망함을 보여주거나, 응보와 처벌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정혜경이 그리는, 약자에게 무자비한 세상은 때로 읽기에 힘겨울 정도로 읽는 이를 몰아붙인다.

수록작 ‘안단테 안단테’와 ‘하이드의 마지막 선물’은 연작소설이다. 별개의 단편소설 같지만, 등장인물·내용·이야기가 모두 이어진다. ‘안단테 안단테’에서 주인공 수민이 살아 온 궤적과 지금 처한 처지는 극도로, 극단적으로 어렵다. 부잣집 공주님으로 자란 유리와 그의 엄마는 수민을 미친 듯이 괴롭힌다. 그러나 수민은 장애인으로 살다 먼저 떠나간 언니 현아를 생각하며 엄마에게 이렇게 다짐한다. “걱정마.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부지런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빚도 갚고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기적이 내게도 일어나겠지.”

‘하이드의 마지막 선물’로 가보자. 부잣집 공주님 유리의 몰락은 철저하고 그의 부자 부모의 삶 또한 급전직하한다. 수민이 꿈꾸었던 ‘기적’은 사실상 일어난다. 매우 치열하게 소설은 전개되면서, 한편으로 TV 드라마를 보는 듯한 속도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