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여지승람 모티브로 총 3권
- 고대~근대 왕도·종교·전쟁 테마
- 다양한 지역탐사로 입체적 조명
- 사라진 땅 ‘만주’의 자료도 실어

이 책을 얼핏 봤을 때 ‘동국여지승람’이라고 읽을 뻔했다. 아니다. ‘한국여지승람’이다. 총 3권으로 묵직하다. 우리 역사와 문화가 아름답고 정성스러운 만듦새에 고스란히 담겼다. 1권 ‘왕도의 시공간’, 2권 ‘종교의 시공간’, 3권 ‘전쟁의 시공간’으로 구성했다.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 ‘동국여지승람’을 모티브로 삼아 시공간을 무대로 깊고 넓게 한국 문화의 흐름과 특징을 입체로 포착한 시리즈이다. 1000여 점 사진과 200여 컷 지도가 입체적 이해를 돕는다.

천년 고도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 가운데 하나인 동궁과 월지를 북쪽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직지플러스 제공

21세기, 한국 현대 문화는 앞다퉈 세계인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한국 문화의 저력은 어디서 왔는지, 우리도 궁금하다. ‘한국여지승람’은 그런 문제의식 아래 왕도 종교 전쟁 등 한국 문화를 구성해 온 핵심 주제를 선정하고 각 주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따라가며 주요 지역과 장소를 탐사하고 정리했다.

1권 ‘왕도의 시공간’. 왕도는 왕국의 수도이다.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한국사의 국가는 대부분 왕국이었다. 한국사의 역대 왕도 탐사는 곧 한국사와 한국 문화의 정수를 탐사하는 것이다. 이 책은 고조선의 왕검성부터 지금의 서울인 대한제국의 한성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이끌어 온 왕도들을 샅샅이 돌아본다.

지도에서 한국사 역대 왕도를 살피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평양 개성 서울 부여 등 주요 왕도는 대부분 서해안에 인접한 1번 국도에 늘어서 있다. 신라 천년 왕도인 경주만이 동해안의 7번 국도에 올라앉아 있다. 그러한 지리적 양상의 역사 문맥을 추적하고 그것이 빚어낸 한국 문화의 시공간적 특징을 설명한다.

사진을 보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경주의 대표적 유적인 동궁과 월지를 북쪽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은 압권이다. 저 숲 뒤 그늘에 신라인들이 있을 것만 같다. 굵직한 주요 왕도 외에도 한국사에는 가야처럼 연맹체를 이룬 작은 왕국이나 삼한처럼 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한 소국이 별처럼 많았다. 그들의 왕도나 ‘국읍’이 전국 곳곳에 별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그 모든 곳에 관한 정보도 빠짐없이 담았다.

2권 ‘종교의 시공간’. 미로처럼 얽혀 있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누비는 여행이다. 한국 사회는 선사 시대 민간 신앙부터 근현대 신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의 용광로였다. 고대에 들어와 고려에서 교리와 신앙의 정점을 찍은 불교, 역시 고대에 들어와 조선에서 사회생활 전반을 장악한 유교, 근대 들어 짧은 시간에 한국인의 생활양식을 바꿔 놓은 기독교……. 인간의 시원적 세계관을 담은 민간 신앙과 한국인의 근대적 민족의식이 투영된 신종교 역시 오늘날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다색으로 수놓고 있는 종교들을 그들 각각이 한국사에서 널리 믿어지기 시작한 시기를 기준 삼아 순서대로 탐사한 책이다.

3권 ‘전쟁의 시공간’. 한국사의 거의 모든 시대와 지역에 걸쳐 전쟁, 그것도 강대한 외세가 도발한 침략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인은 때로 침략자를 격퇴했고 때로 그들 앞에 무릎 꿇었지만, 끝내는 그 모든 전쟁에서 살아남아 침략과 억압을 증오하는 특유의 문화를 형성해 왔다. 고대와 고려 시대의 전쟁이 주 무대로 삼은 만주와 북한 지역도 포함됐다. 또 지금껏 알려진 주요 전장이나 영웅의 행적에 머물지 않고 삶의 터전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운 무명의 전사들과 전장을 찾아내 탐사했다.

이 책에는 ‘한국사에서 사라진 땅 만주’ 사진이 있다. 우리 조상이 살았던 땅인데, 발해가 멸망하면서 한국사 영역에서 멀어져 간 만주. ‘광활한 만주 벌판’이라는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오르는 장관이다. 총 3권의 시리즈에 실린 사진과 지도만 봐도 우리 역사와 문화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