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전투에서 취할 수 있는 전리품은 다양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적이 지녔던 최첨단 무기와 갑옷 그리고 말, 보급품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리품의 대부분은 전투가 끝난 후 전사자나 부상병 처리 과정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기고, 흩어진 무기들을 끌어모으는 과정에서 획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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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복천동고분군 출토 10,11호분 목가리개(왼쪽)와 중국 지린시 집안 통구 12호 고구려 고분벽화. 국립김해박물관·부산박물관 제공 |
그렇다면 전투 중에 자신의 용맹을 즉각적으로 증명하고, 전공을 세울 방법은 없었을까? 적의 깃발을 포획하거나 적장을 포로로 잡는 행위 등도 있겠지만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적장의 목을 베어 사람들에게 흔들어 보이는 행위일 것이다. 이러한 잔인한 행위에 대한 고대 기록도 많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천왕조에는 관구검이 침입하니 왕이 친히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항전하여 적의 머리 3000급을 베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천왕조(中川王條)에도 위나라 장수 위지해가 쳐들어오니 맞서 싸워 8000급을 베었다고 한다. 적의 목을 베는 자에게는 1계급을 올려주었기 때문에 이를 수급(首級)이라고 표현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인 집안 통구 12호에는 더욱 생생한 참수장면이 있다. 아마도 이 장면 이전에 두 전사 간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적이 낙마했을 것이다. 그런데 말 위에서 긴 창이나 칼을 휘둘러 적을 죽이지 않고, 같이 말에서 내려 대응하고 있다. 적의 목을 베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도 반격하기 위해 칼을 손에 쥐려 하지만 곧바로 발로 밟아 제어하면서 가지고 있던 자신의 칼을 쳐들고 적의 목을 벤다. 그런데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한 적의 목을 베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투구에는 목까지 길게 늘어뜨린 가리개가 있을 뿐더러 이에 더해 목을 보호하는 철제 목가리개까지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제 목가리개는 삼국시대 신라 가야의 수장층이나 지배계층의 무덤에 부장되는 품목 중 하나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목은 전장의 상황에서는 적이 노리는 전리품이기 때문에 목가리개로 자신의 목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목가리개를 보유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부산의 대표적인 가야 고분군인 복천동고분군에서도 10여점의 철제 목가리개가 출토됐으며, 복천박물관에서 10,11호 출토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유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두꺼운 코트깃을 세우며 목을 감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