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문인. 1542년 의성 외가에서 태어났다. 1557년 향시 합격, 퇴계 이황 밑에서 김성일과 같이 공부했다. 명종 21년(1566년)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권예문관검열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
| 서애의 ‘진사록’. |
임진왜란 중 병조판서일 때 부인을 잃었지만, 통신사 파견 문제에 매여 떠나는 상여만 지켜봤다. 훈련도감을 건의해 신설하고, 화포 같은 각종 무기 제조, 외방 산성 수선, 진관법(지역 자체 방어)을 손봤다. 지방에 온 장군이 현지 군대를 지휘하는 제승방략 체제를 왜군 방어에 실패한 요인으로 꼽았다.
1607년 66세로 숨지기 전인 1602년 청백리로 뽑혀 삭탈관직 불명예를 씻었다. 사후에 위패가 병산서원 등에 봉안됐고, 문충공 시호를 받았다. 서애집 신종록 영모록 운암잡기 등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