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하나의 사건, 세 가지 시선…확신의 함정은 얼마나 위험한가

고레에다히로카즈 ‘괴물’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4-01-11 19:15:06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철학자인 폴 비릴리오는 저서 ‘소멸의 미학’에서 식탁에 둔 컵의 존재를 잊어버린 아이의 예를 든다. 아이에게 컵은 눈에 보이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 때문에 무심코 팔을 흔들다 물을 쏟아버리고 꾸중을 듣게 되지만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선을 돌리자마자 물이 든 컵은 아이의 의식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풍경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의식의 공백을 경험하는 아이의 지각은 성장하면서 달라진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받아들이도록 훈련받는다.
괴물 스틸컷. 공식 홈페이지 제공
영화의 몽타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절된 장면을 이어 붙이는 방식에 따라 시공간은 재구성되고, 관객은 분절된 사건의 흐름을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종의 함정이 있다. 우리는 프레임이 허용된 만큼만을 보고, 익숙한 서사의 관성에 따라 나머지 내용을 상상하고 짐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순간의 집합을 토대 삼아 임의로 재구성한 대안 서사가 총체적 진실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단지 입장에 따라 납득할 수 있는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고, 합리적이라고 스스로 믿어버릴 따름이다.

‘괴물’(2023)은 이와 같은 서사의 맹점을 지르고 들어간다. 영화가 세운 공의 절반 이상은 각본을 담당한 사카모토 유지의 몫일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상적인 연출 호흡은 복합적인 구조를 갖도록 짜인 각본을 만나며 장르영화 못잖은 긴장과 몰입감을 얻고, 거기에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BTTB’ 앨범에 실린 ‘aqua’가 메인 테마)이 모여 최고도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라쇼몽’(1950)처럼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축으로 두고 엇갈린 세 가지 시선을 번갈아 제시한다. 시가지 한가운데서 화재에 휩싸인 건물을 비추는 장면은 각기 다른 앵글로 반복되며 영화 시점이 바뀜을 환기시킨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각 장이 그 자체로 독립된 완결성을 갖는 ‘이야기’가 성립되는 것처럼 속이는 ‘서사적 트릭’에 있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어머니 사오리(안도 사쿠라) 시점에 철저히 입각한 영화 첫 장은 교내에서 벌어지는 이지메와 진상을 은폐하려는 학교 조직 간 대립으로 믿어지도록 관객을 속인다. 그러나 사오리 관점에서는 완전한 정합성을 가졌던 담임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의 이지메는 정작 교사 입장에 들어가는 두 번째 장에서는 판이한 진상을 드러낸다.

미나토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힌다고 보는 호리의 믿음 또한 두 아이의 동성애적 관계라는 진상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에서 사실은 오해였음이 드러난다.

이 모든 이야기가 형식적인 안정과 평화를 위해 문제의 근원을 외면한 채, 비정상적인 개인을 솎아내고 배제하라는 일본식 질서 의식에 대한 비판으로 수렴됨은 물론이다.

한편으로 ‘괴물’은 서사의 구성 방식을 통해 또 다른 행간의 메시지를 남긴다. 어쩌면 세상은 저마다의 정의와 진실만이 옳다고 믿는 ‘괴물’이 넘쳐나서 활활 불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지각과 믿음은 진실을 다루기엔 너무나도 불완전하며, 그토록 확신을 가지기엔 허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확신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객관의 거리를 잊지 않는 것이다.

불길이 치솟는 우리 세상이 언젠가 고즈넉한 물가의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2. 2[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3. 3[속보] 재커라이어, 나흘 만에 경질.. ‘역대 최단 기간’ 백악관 대변인
  4. 4[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5. 5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6. 6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7. 7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8. 8‘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9. 9[속보] 다카이치 총리, 야스쿠니 가을 제사 공물 봉납
  10. 10"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1. 1[속보]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사과…“폄훼 의도 없어”
  2. 2김민석, '재정 빨대' 발언 사과... "추미애에게도 사과 요청했다"
  3. 3[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4. 4[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5. 5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6. 6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7. 7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8. 8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9. 9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0. 10李대통령, 부상 소방관·장병 쾌유기원…“천금 준들 아깝겠나”
  1. 1"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3. 3"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4. 4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5. 5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6. 6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7. 7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8. 8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9. 9‘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10. 10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1. 1[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2. 2[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3. 3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4. 4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5. 5‘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6. 6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전현직 교사 '불구속 송치'
  7. 7"뉴스거리 만들려 범행" 인천 흉기난동범 최충락 주거지 압수수색
  8. 8이태원 참사 유족, 4주기 앞두고 진상규명 촉구…"책임자 처벌" 외치기도
  9. 9부천 공장 화재, 금속 세척 작업 중 '유증기 스파크 발화' 추정
  10. 10통영서 단체 수영하던 50대, 1.8㎞ 표류…해경 구조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윤상건-Creature
박지은- little talk-Venic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경비원 /박필상
자화상 /최은지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5일 (음 9월 5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4일 (음 9월 4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비 오는 가을밤에 읊은 시
생육신 남효온이 가을 강변의 풍경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