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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87> 상일까 도마일까

삼국시대 전문 장인들 거주지 추정 고촌유적서 출토된 ‘상’

  • 박미욱 정관박물관장
  •  |   입력 : 2024-01-29 19:03:1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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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원룸에 사는 자취생에게 상은 다용도다. 일용할 양식이 놓인 밥상이 되고, 청춘의 꿈을 준비하는 책상도 된다. 상(床)은 밥상, 책상, 제상, 평상 등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반(盤)과 상(床)은 상다리로도 구별된다. 상은 가까운 데로 옮기거나 거의 옮기지 않는 용도에 적합하지만, 반은 다리가 없거나 짧은 발이 달려 뭔가 담아 옮기는 용도로 쓰곤 한다.
부산 기장군 고촌유적에서 출토된 상(오른쪽)과 상면 칼자국 상세모습. 부산박물관 제공
반상(盤床)의 역사는 일찍부터 확인할 수 있다.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다리 셋의 삼족동반(三足銅盤), 5~6세기 고구려 고분 각저총 널방 북벽 부부상상도와 무용총 주실 오른쪽 벽의 ‘사각반’이 대표적이다.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에도 타원형 ‘소반’이 남아 있다. 기록에서도 반상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 잡지 직관지엔 궁정 수공업 관청의 직제 가운데 밥상 책상 의자 따위의 나무 제품을 만드는 궤개전(机慨典)·궤반국(机盤局)이란 부서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예지에도 조안(詔案)·서안(書案)·향안(香案) 등 기물이 나오고, 조선 순조 수원행궁 비품대장에 흑칠고족상(黑漆高足床)·중원반(中圓盤)·평반(平盤) 등의 물목이 보인다. 문헌이나 고고 자료를 검토하면 우리나라에서 밥상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쓰였고, 지금까지 존재한다.

부산 기장군 고촌유적에선 통나무를 깎아 상면과 다리를 일체형으로 만든 상이 출토됐다. 길이 50㎝ 조금 넘는 상은 얼핏 키 낮은 1인용 밥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상치고는 발이 너무 짧고, 흘러내림을 방지하는 테두리가 상면에 없다. 음식을 실어 나르는 상으론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밥상의 특징인 옻칠 장식도 확인되지 않고 자세히 보면 깊이가 다른 칼자국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곳곳에서 확인된다. 도마나 작업대 용도로 추정된다.

비슷한 형태지만 식기를 올려놓는 상과 음식물을 자르기 위한 도마(조판·俎板)를 구분한 중국 한(漢)나라 기록을 참고하면 그런 심증이 더 간다.

고촌유적은 삼한 삼국시대 저습지 유적으로, 다양한 생산 활동을 하던 전문 장인 집단이 거주했으리라 추정되는 곳이다. 사진 속 상과 함께 절구 칠기빗 두레박 등 나무로 만든 생활용구가 마치 어제까지 사용한 것처럼 생생하게 출토됐다. 각골(角骨)과 복골(卜骨) 등의 골제품 칠제품 동물뼈 등 귀중한 유물도 함께 나왔다. 고촌유적이 각별한 이유는 무덤 부장품과 달리 실생활에서 ‘사용감’이 진하게 묻어나는 생활용품이 많아 삼국시대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상을 복원할 좋은 자료가 된다는 점이다.

정관박물관 전시실엔 칼자국이 선명한 이 유물뿐만 아니라 당시 썼던 실생활 용구가 전시돼 있다. 저습지에 묻혀 있어서 지금껏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건 역으로 당시 삼국시대 고촌인들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녹록하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살아냈던 고촌인의 삶이 칼자국 가득한 도마에서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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