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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2> 완도 매생이

매력 터지는 식감…생기 가득 향긋함…이계절 별미라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2-06 19:22:24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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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양식장 상품성 떨어뜨린다며
- 천덕꾸러기 취급 받던 해초류
- 맛·영양 좋은데다 소득도 쏠쏠
- 단번에 ‘효자 수산물’ 몸값 상승

- 2월까지 완도서 年 2500t채취
- 굴국·떡국·라면·계란찜·파스타
- 여러 음식과 궁합 좋은 식재료
- 냉동·동결건조로 전국적 유통

전라도 해안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먹는 해초 국이 있다. 남도의 예쁜 딸을 가진 어머니가 귀한 딸 고생시키는 사위에게 먹이는 ‘미운 사위 국’, 바로 ‘매생잇국’이다. ‘매생이’는 해조류 중 가장 오라기가 가느다란 해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오라기이기에 서로 뭉쳐져 있으면 밀도가 아주 빽빽하다. 국을 팔팔 끓여놓아도 김이 피어오르지 않을 정도이다.
매생이를 넣어 만든 매생이 떡국. 매생이의 푸른 색감과 그윽한 해감내, 영양소까지 어우러져 올 설 연휴에 먹어도 좋은 음식이다.
그래서 멋모르고 훌훌 들이켜다가는 혼쭐이 난다. 입천장 홀딱 다 데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운 사위 골탕 먹으라고 주는 국이 바로 매생잇국이다. 밉기는 하지만 딸의 남편인지라 맛도 영양도 좋은 음식을 먹이기는 하되, 뜨거운 맛도 한번 단단히 먹어 보라는, 장모님의 뒤끝 작렬 음식 이겠다.

■ 천덕꾸러기 해초가 귀한 수산물로

양식 매생이를 건져 적당한 크기로 뭉치는 ‘재기’ 작업을 하고 있다. 전남 완도군청 제공
전라도 해안가에는 이 매생이를 포함해 비옥한 갯벌의 풍부한 영양분을 먹고 자라는 겨울 해초 사총사가 있다. 김 파래 감태 그리고 매생이다. 남도 사람들은 이 해초들로 나물을 무쳐 먹고 국 끓여 먹고 김치 담가 먹고 말려서 두고두고 밥에 싸 먹는다. 겨울 밥상에서는 늘 빠지지 않는 식재료란 뜻이다. 그래서 이들은 ‘바다의 겨울 효자’라고도 불린다. 맛도 영양도 좋을뿐더러 이를 통한 소득도 쏠쏠해서 자식 부럽지 않다는 의미도 있다.

특히 남도 겨울을 다니면서 독특했던 음식 중 하나가 새콤한 감태지였다. 갯벌 위를 푸르게 물들인 감태를 일일이 손으로 채취해 김치 담그듯 삭혀서 먹는데,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는 고향의 소울푸드, 어머니의 집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다.

이에 못지않게 매생이도 남도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소울푸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옛 이름으로 매산태.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고 해서 매생이라 불린다. 지금은 완도 해남 고흥 장흥 등 남도의 해안에서 양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매생이는 양식 생물 중에 미더덕 홍합과 더불어 인생 역전의 수산물이다. 이들은 멍게 굴 김 양식장에서 애물단지인 해적생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특히 매생이는 김 양식장에서 까만색 김 사이 녹색으로 군데군데 군생해 고급 김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한다.

김은 전체적으로 윤이 나고 짙은 까만색이어야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군데군데 푸른 빛이 도는 매생이가 김발에 붙으면 김값이 떨어진다고 일일이 떼어낼 정도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이들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한 수산물이 됐다.

매생이는 ‘자산어보’에 의하면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르고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잘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적혀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매생이가 조선조 장흥군의 진상품으로 기록돼 있기도 하다. 이를 보아 전라도 해안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매생이로 국 등을 끓여 먹은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양식 성공하며 대중화

매생이는 물이 깨끗한 해안에 서식하기에 오염원이 적은 해역에서 널리 분포한다. 주로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까지 간조대에서 자란다. 본격적인 매생이 채취는 11월부터 2월까지. 이 시기가 지나면 올이 억세어지고 색이 변해 맛이 없어진다.

매생이는 올이 가는 데다 밀집 형태로 엉켜있기에 쉬 상하고 보관 또한 어렵다. 게다가 한때 생산량이 적고 유통 시스템도 열악해, 오랫동안 산지 주변 해안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향토 식재료이자 토속음식이었다.

그러다 완도 고금도 등지에서 매생이 양식에 성공하고, 1999년 ‘해남 기술관리소’에서 매생이 ‘육상 인공 채묘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2000년도부터 본격적인 매생이 양식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현재 완도에는 고금도 등지에 대형 양식장이 조성돼 있는데, 연평균 2500t 내외의 매생이를 생산하고 있단다. 이는 국내 전체 매생이 생산량의 60% 규모이다.

매생이 양식은 9월~10월 초순 매생이 자연군락지의 개펄 자갈밭에 채묘 발을 설치해 채묘한 뒤, 매생이가 연녹색으로 보일 정도로 자라면 양식장에 본격 이식을 한다. 이후 양식장에서 12월부터 2월까지 채취한다.

채취된 매생이는 포구에서 물에 헹군 뒤에 물기를 빼내어 적당한 크기로 뭉치는데 이를 ‘재기’라 한다. 마치 잘 빗은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올올이 윤이 난다. 한 재기 무게는 주로 350~400g. 주로 열 재기가 한 박스로 유통되는데, 요즘은 한 재기 소포장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굴과 환상 조합, 떡국·라면도 좋아

매생이 라면(위)과 매생이 전.
이 매생이는 겨울철 양질의 바다 식재료로,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된다. 남도에서는 주로 국을 끓여 먹었는데, 짙은 해초 향과 바다냄새를 내면서도 녹조류 특유의 싱그러움이 일품이다.

특히 매생이와 같은 시기에 생산되는 굴과 음식 궁합이 잘 맞아 요즘은 매생잇국에 굴을 함께 넣어 조리하는 ‘매생이굴국’이 대세이다. 굴의 구수함과 매생이의 향긋함이 서로 잘 어울려 겨울 별미로 손꼽히고 있다.

병색이 있는 집안 어른이나 산모, 회복기 환자들에게는 ‘매생이 죽’이 안성맞춤이다. 자체가 영양식인 데다 싱그럽고 향긋함으로 입맛까지 되살려 주는 역할 또한 하기에 그렇다. 설날 전후에는 ‘매생이 떡국’도 좋다. 새로운 한 해를 건강하고 복된 나날을 기원하는 음식인 ‘떡국’에다 매생이의 푸르른 색감과 그윽한 해감내, 그리고 영양소까지 어우러지기에 새해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요즘은 이 매생이를 소주잔 분량으로 나누어 얼렸다가, 라면을 끓일 때 한 덩이씩 넣어 ‘매생이라면’으로 먹기도 한다. 라면과 함께 매생이가 입 안으로 크게 한 입 들어가면, 온통 바다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식감을 즐길 수가 있다. 국물 또한 시원하면서도 진한 해조류 특유의 풍미로 한껏 넘쳐난다.

계란찜, 계란말이 등에도 매생이를 넣으면 아이들 간식이나 반찬으로, 그리고 간단한 술안주로도 좋은 ‘매생이 계란찜’, ‘매생이 계란말이’가 된다. 매생이를 쌀가루나 부침가루와 함께 반죽해 푸르스름한 ‘매생이 전’으로 부쳐놓으면, 주전부리나 막걸리에 곁들이는 안주로도 금상첨화이다. 요즘은 퓨전요리로 매생이를 넣은 ‘매생이 파스타’도 꽤 인기를 끌고 있다.

한때 멀리 운반할 수 없어 한 지역에서만 소비되던 매생이. 그 바람에 매생이 음식이 남도 사람들만이 즐겨 먹어온, 남도의 향토 음식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전 국민이 그 맛과 영양에 반해 널리 찾는 겨울 식재료가 됐다.

요즘은 냉동과 동결건조로 보관이 쉬워져, 사시사철 매생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절이다. 마트에서도 쉬 구할 수 있다고 하니, 다가오는 설에는 이 매생이로 가족 모두 떡국 한 그릇씩 나눠 보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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