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생으로 2007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한 정안나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정 시인은 모더니즘 시를 창작하면서도 우리의 주요한 현실을 잊지 않는 시인이다. 정 시인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갖가지 현상을 마주하고 특유의 감성적 어법으로 쓴다. 그래서 정안나 시 세계를 더욱 주목하게 된다.

시 ‘부산이라는 가마뫼에는’을 보자. “음소거해주세요// 가마솥의 우암동은 소 막사가 많아 6.25 때 함경도민이 피난와 소 막사에 살기도 했네 배급의 밀가루는 고향의 밀가루 냉면을 만들어 그것이 밀면의 시작이라는// 밀면 냄새나는 비대면 강의// 나는 골목의 판잣집에 들락거리네 이북 사투리의 골목은 냉면을 잃기 전에 밀가루 반죽으로 똘똘 뭉치네 양복점 지나 보리밥에서 우암동 밀면 맛집으로 물밀면 비빔밀면 주물럭을 시작하네// (중략) 밀면은 음소거해주세요//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피란민들의 약속이 있어 그 아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약속을 받아들이는 점집을 즐비하게 만드는 것 나쁜 쪽으로 흘리지 않았다 (하략)”

일제강점기부터 전쟁 전후의 부산 역사가 시 구절에 멋스럽게 녹아들어 더욱 눈길이 가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