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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3> 합천 삼가 한우

합천 인심 넉넉한 모둠구이, 300년 역사 구수한 장터국밥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2-20 19:14:06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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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축산업 발달한 지역
- 장날이면 거대한 가마솥마다
- 푸짐하고 진한 국밥 보글보글

- 1980년대 후반 식육식당 등장
- 정육점마다 한 마리 통째 도축
- 살치·안창·토시살 등 숭덩숭덩
- 자체 정육으로 싸게 공급 가능
- 고기 듬뿍 ‘된장술밥’도 별미로

농사지은 수확물 이고 지고, 시오리 새벽 고갯길을 걷고 걸어가던 장터 길. 해거름에 남은 물건 요행히 다 팔고는 식솔들 생각에 고기 한 근, 제철 생선 몇 마리 손에 들고 기뻐했을 장터 촌로들.
경남 합천 삼가면에서는 전통 깊은 오일장 ‘삼가장’이 선다. 소를 중심으로 축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라 식육식당마다 소 한 마리씩 경매받아 정육하면서부터 저렴하고 맛 좋은 한우구이와 장터국밥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쇠전 소 판 돈으로 호기롭게 막걸리 한 사발 돌리고, 거나한 기분으로 소리도 한 자락하며, 달빛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우리네 아버지들도 있었다. 한때 오일장이 서던 시절의 풍경이다. 지금은 좀체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새삼 그리워지는 정경이기도 하다.

■오일장 중심 국밥 맛집으로 시작

토시살
경남 합천군 삼가면. 이곳에는 역사가 300년 가까이 된 큰 규모의 오일장 ‘삼가장’이 선다. ‘삼가’ 하면 삼가장이 생각날 정도로 면 소재지 전체가 장터였던 곳이다. 서부경남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장이었다.

한때 경남의 중심도시였던 진주시의 동부 지역에 위치해 합천과 진주를 잇는 물류 중심지이자 다양한 물산이 일차 집결되던 곳이었다. 특히 미곡장과 우시장이 크게 섰던 장시이기도 했다.

삼가장은 특히 우시장이 주변 지역에 비해 크게 발달했다. 삼가면은 산지가 잘 형성돼 있으면서 청정자연의 환경 속에 소를 키우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그래서 소를 중심으로 축산업이 발달했고, 주변 농경지역 소 수급을 위해 우시장이 크게 번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터국밥도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예부터 쇠전 주변으로는 장날마다 푸짐하고 진한 장터국밥을 가마솥에서 끓여내던 국밥집들이 자리 잡곤 했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장터국밥은 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되고 있다.

삼가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의령장, 함안장 등과 더불어 서부경남의 대표적인 장터국밥으로 손꼽히는 장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국밥 먹으러 장터 간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1등급 한우 가성비로 즐겨

제비추리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 정육점에서 국밥을 파는 식육식당이 발달하면서, 삼가장은 장터국밥집 대신 식육식당에서 한우 관련 음식을 파는 방식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도 삼가장 곳곳의 식육식당에는 소고기를 직접 잡아 정육으로 팔고, 한 편에선 한우구이와 장터국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 장터국밥 대신 한우구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식당이 많아지면서 삼가장은 한우구이를 중심으로 하는 ‘한우 거리’로 변신하게 된다. 1980년대 말부터 한두 집씩 정육한 소고기를, 정육점에서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하면서부터다. 이러한 식당이 하나둘 늘어나 현재 스무 곳 정도의 한우식당이 1등급의 질 좋은 한우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장터국밥을 팔던 삼가장이 한우구이 식당으로 집단화된 것은 우선 한우 산지라는 점, 한우 소비가 늘어나면서 삼가장 정육점마다 소를 한 마리씩 경매 받아 각자 정육을 하면서부터이다. 소 한 마리를 정육으로도 팔고, 정형 후 남는 고기나 부산물들로 장날 싼값에 국밥도 끓여내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주머니 든든한 이들이 장날에 소고기 한 근 구워 먹기를 청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식당 한 편에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장만하게 된 것이, 지금의 한우구이 거리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살치살
그래서 아직도 이곳 한우구이 집들은 거의 정육점을 겸한 식육식당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내 분위기는 다소 수더분하면서도 시골스러워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아직도 오래된 맛집 중에는 소고기 부위를 세분화하지 않고 모둠으로 숭덩숭덩 썰어내 주는 곳이 있다. 그래도 이곳 한우는 모두 1등급으로, 맛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고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가의 한우식육식당은 일반 한우 전문 식당보다 가성비가 높다는 것도 나름 특징이다. 양질의 한우를 비교적 싸게 판매해 양 또한 넉넉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식당이 한우 한 마리를 통째로 도축해 자체 정육을 하기에 싸게 제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주말이면 부산 대구 진주 등지에서도 삼가 한우를 먹으러 장사진을 친다.

■다양한 특수 부위 한 접시 가득

삼가 한우식당의 또 다른 특징은 한우식당 대부분 대표 메뉴가 ‘한우 모둠’이라는 것. 요즘은 점차 부위를 세분화하고 특수부위도 제공하지만, 원래 이곳 한우식당은 한우의 다양한 부위를 크게 나누어 한 접시에 내는 방식이 보통이었다.

그러하기에 소고기의 풍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다양한 부위의 식감도 느낄 수 있다. 무심하게 삐져내듯 썰어낸 ‘한우 모둠’은 얼핏 보면 투박해 보이지만, 구워놓으면 육즙이 수밀도처럼 터지고 씹을수록 구수함이 내내 입안을 돌고 돈다.

요즘 들어 삼가 한우식당에서도 한우 부위를 세분화하는 식당이 많아져, 부위별 본연의 맛을 충실히 느끼고 싶은 식도락가들이 자주 찾고 있기도 하다. 특히 특수부위는 고기의 질도 좋을뿐더러 정형이 잘 돼있어 해당 부위 특정의 맛이나 풍미,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우 모둠은 주로 살치살 안창살 토시살 치맛살 제비추리 등을 한꺼번에 내는데, 특수부위의 독특한 맛과 육향 식감을 일별하면서 먹을 수 있어 좋다. 각각의 부위가 개성이 강하기에, 한 점 한 점 먹는 재미가 쏠쏠하면서 그 만족도도 높은 메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삼가 한우식당에서는 한우를 먹고 난 다음 꼭 된장찌개(사진)로 마무리한다. 짭조름한 토속 된장 넉넉히 풀고 땡초 몇 개 맵싸하게 넣고 끓여낸 된장찌개는, 혹시 모를 고기의 기름진 입 안을 개운하고 깔끔하게 한다.

한 술 한 술, 국물을 뜰 때마다 구수하면서도 짭짤한 뒷맛이 흔쾌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된장찌개에 밥을 넣고 끓여내면 영락없는 ‘술밥’이 된다. 그리하여 또 술잔 한 순배 도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삼가장의 식육식당 풍경이다.

큰 쇠전이 있어 장터국밥 집들이 발달했던 삼가장. 지금은 양질의 한우를 값싸게 먹는 한우구이 거리로 입소문이 났다. 투박한 듯 순박함이 묻어있는 삼가장의 한우식육식당. 이제 곧 봄이 올 모양이다. 혹 봄나들이할 요량이면 삼가 한우 한 점 맛보는 코스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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