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꽉 막힌 소통…삶의 근원적 비극성을 응시하다

‘추락의 해부’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4-02-22 18:53:36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쉰들러 리스트’(1993)에 관한 글에서 멋들어진 비유를 든 바 있다. 경비원은 도둑이 들 것을 걱정해 매번 출입하는 손수레에 무엇이 들었는지 철저히 감시한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한 채 당하고 만다. 도둑이 훔쳐가는 건 다른 물건이 아닌 손수레 자체였던 것이다.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2023·사진)는 바로 그 손수레와도 같은 영화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얻은 영화는 겉으로는 사건의 진실을 추리해 나가는 법정스릴러처럼 보인다. 뒤로 흘러갈수록, 영화는 최종적 진실에 도달하길 바라는 우리의 기대와 어긋나고 만다. 중요한 건 감춰진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법정 공방에서 펼쳐지는, 장님 코끼리 더듬기 마냥 헤매다 무너지는 인간군상의 혼란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오토 프레밍거의 ‘살인의 해부’(1959), 더 나아가 빌리 와일더의 ‘검찰 측 증인’(1957)을 의식했을 영화는 작가 산드라(산드라 휠러)와 대학교수 사뮈엘(사뮈엘 테이스) 부부, 교통사고 충격으로 시각장애를 안게 된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의 일상이 파열음을 내며 깨지는 데서부터 막을 연다. 산드라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학생을 맞이하고, 다니엘은 강아지 스눕을 데리고 산책하는 가운데, 사뮈엘 혼자 추락해 의문의 죽음을 맞고 시체로 발견된다.

주의 깊게 연출된 상황의 설정이 있다. 아내 산드라는 남편 사뮈엘이 틀어놓았을 높은 볼륨의 음악 때문에 타인과의 대화를 방해받는다. 사건 당일, 위층에 있을 사뮈엘의 존재를 가족 중 누구도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다. 테니스공이 굴러떨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온 스눕은 현장의 무언가를 보았음직하고, 카메라는 종종 낮은 앵글로 강아지 눈높이에서 공간을 보기도 하지만, 정작 동물에게는 의사표현능력이 결여돼 있다.

인지능력이 차단당한 작중 인물의 상황은 관객 입장으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분열된 가족과 소통 불가능성 그리고 파편화된 진실. 이 도입부는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를 다 담고 있다.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법정은 어느 쪽 시나리오가 설득력이 있는지 겨루는 승부의 장으로 변질된다. 배심원단에 판단의 재료로 주어지는, 생전 사뮈엘이 남긴 부부싸움 녹음파일 또한 표정과 뉘앙스, 행동 같은 구체적 시각 정보가 잘려 나가 확신할 수 없는 점투성이인 정황 증거일 뿐이다. 프랑스어가 서툰 독일인 여성작가는 영어 통역을 거쳐야 하고, 사실상 재판 향방을 결정지은 사뮈엘의 독백은 마치 ‘라쇼몽’(1950)에서 살해된 사무라이의 영혼에 빙의한 무당의 목소리처럼 아들의 증언을 통해서야 전달될 수 있다.

‘추락의 해부’는 소통 불가능의 조건을 겹겹이 배치해 놓음으로써, 표면의 이면에 자리하는 삶의 근원적 비극성을 응시케 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괴물’(2023)에 연이어 진실의 상대성에 관한 영화를 다시 만나는 셈이다. 같은 지평에 서있더라도, 내가 보는 세상과 당신이 보는 세상은 같지 않고, 저마다 섬이 돼버린 인간과 인간 사이엔 도저히 못 건널 깊은 질곡의 심연이 패여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의 앎,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3. 3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4. 4[도청도설] 부캉이가 띄운 북항
  5. 5“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6. 6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7. 7‘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8. 8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9. 9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10. 10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1. 1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2. 2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3. 3폭풍 SNS, 배우자 외부활동…총선운동 방불케 한 추석행보(종합)
  4. 4與 “민생 더 챙기라는 말 많아” 野 “대선 언제냐며 시민 분노”
  5. 5안보·사법·與 내홍…추석 이어 국감정국 달군다(종합)
  6. 6北포로 송환 공개 논란, DMZ 사고 조사 지연…연휴 일파만파(종합)
  7. 7[2026 국감 브리핑] 김희정 "'대입 원서 접수번호로 경쟁률 유추 가능' 사실로 확인…정부 대책마련해야"
  8. 8연휴 강타한 우크라 포로 송환· DMZ 지뢰사고 늑장조사 논란
  9. 9李대통령, 미국·멕시코 순방 후 귀국…한미회담 등 성과 점검
  10. 10울산 북구·구의회, 노동자 권익 보호 위해 맞손 잡았다
  1. 1150년史 부산항 무대 삼은 아레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K-팝 명소로
  2. 2“부산관광 뜨는 지금이 적기” 호텔투자 열기 서부산까지
  3. 3K-팝 효과 끝? 관광수지 넉 달만에 적자 전환
  4. 4한화에어로 ‘경력직 가이드라인(특정 학력·나이)’ 논란…“채용과정 개선할 것”(종합)
  5. 5금고 과당경쟁 제동…지역은행 판도 촉각
  6. 6늘어나는 법무수요…부산도시公 사내 변호사 찾기 안간힘
  7. 7“독자 기술이 미래 경쟁력…내년 매출 4100억 목표”
  8. 8세 가지 맛 한 번에…CU 트리플 삼각김밥 가성비 한 끼 호응
  9. 9대출 갈아타라더니…은행 16곳 중 11곳 주담대 ‘금리 역전’
  10. 10CG 없이 대규모 전쟁·액션신 뚝딱…생성형 AI 활용 본격화
  1. 1연휴 사흘간 32만 ‘부캉이앓이’…다가오는 작별(종합)
  2. 2분유에 소주 타 먹인 친부…여직원 2년간 추행한 임원
  3. 3‘부캉이’를 市 명예 홍보대사로…온라인 투표 몰표
  4. 4영화숙·재생원 진실규명 공로 손석주 ‘민주시민상’
  5. 5부산시 재정난 겪는데…시유재산 세입관리 부실 투성이
  6. 6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7. 7금정구의원이라 믿었는데…임대보증금 1년 넘게 안 줘
  8. 8선거때 식사대접 혐의 사하구 체육회장 송치…돈봉투 수사는 무혐의
  9. 9부산지하철노조 쟁의 가결…조정 거쳐 내달 파업 예고
  10. 10양산 춘추공원 재정비…6년 만에 변경안 고시
  1. 1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2. 2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3. 3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4. 4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5. 5[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6. 6높이뛰기 우상혁, 2m22로 동메달
  7. 7우승 타이틀 박탈 위기…맨시티 ‘유죄 판단’보도에도 회장 “결백 입증하겠다”
  8. 8[속보]'약속의 8회’ 한국 야구, 일본 3-1로 꺾고 AG 5연패
  9. 9한국 야구, 일본 꺾고 금메달…아시안게임 5연패 달성
  10. 10남동헌,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금메달
미리보는 제31회 BIFF
‘아카데미 직행표’ 두고 세계 13편 경쟁…12편 프리미어 상영
한국문학관 기행
부끄러움 없는 삶, 오늘 우리에게 성찰을 던지는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소윤-sky above,river below,and birds between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디세이’ 6주 연속 1위 질주, 역대 외화 관객 수 7위 올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8일 (음 8월 18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3일 (음 8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추석 때 사람들 만나 술 마시며 시 읊은 조선 중기 권벌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