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 노고 풀어주고자 밤새 잔치
- 영인 돌아가고 9일 연속 목욕
- 그 사람 누구인지 궁금증 더해
- 폭우 속 배 타고 나간 두 아들 걱정
- 억울한 망자들 위해 제사 지내
4월19일[5월15일] 맑음.
습열(濕熱)로 인해 침을 20여 군데나 맞았더니 속에 번열이 나는 것 같아 종일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어두울 녘에 영등포 만호가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남자 종 목년과 금화, 풍진 등이 와서 인사했다. 이날 아침에 남녀문(南汝文)을 통해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과연 그렇다면 얼마나 기쁘랴마는 믿을 수 없다. 이 소문은 진작부터 퍼졌지만 아직 확실한 기별은 오지 않았다.
※남녀문은 난여문이라고도 하며 동일인이다. 이순신은 남녀문을 통해 항복한 왜인들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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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신년 5월 3일 일기에서 장군은 한산도 군영의 심각한 가뭄을 걱정한다. 이어 6일 비가 오자 무척 기뻐한다. 당시 한산도 군영 물 사정은 여의찮았다. 사진은 한산도에서 만난 거북선 형상 음수대로, 우리 후손은 여기서 걱정 없이 물을 마신다. |
4월20일[5월16일] 맑음.
경상수사가 와서 내일 놀러오라고 나를 초청했다. 활 10순을 쏘았다.
4월21일[5월17일] 맑음.
아침 식후에 경상수사의 진으로 가는 길에 우수사의 진에 들렀다. 우수사와 함께 경상수사의 진으로 갔다. 종일 활을 쏘고 잔뜩 취해서 돌아왔다. 조방장 신호가 병으로 자기 사가로 돌아갔다. 영인(永人)이 왔다.
4월22일[5월18일] 맑음.
아침 식후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부산의 허내은만이 보낸 고목[告目, 보고서]에 “명나라 사신(이종성)이 달아나고 부사(副使, 양방형)는 여전히 왜놈의 진영에 있는데, ‘사신이 4월 8일에 달아난 사유’를 명나라 조정에도 알렸다”고 했다. 김 조방장이 와서 노천기가 술을 먹고 주책없이 굴다가 본영진무 황인수, 성복에게 욕을 당했다 하므로, 곤장 30대를 때렸다. 활 10순을 쏘았다.
※허내은만은 이순신이 부산에 심어 둔 첩보원인데, 며칠 전 들은 의문점(4월 7일 일기 참조)을 부산 허내은만에게 물었더니 위와 같은 보고가 온 것이다.
4월23일[5월19일] 맑음.
흐리다가 늦게 개었다. 아침에 첨지 김경록이 들어왔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나가 공무를 보고 김첨지와 같이 술을 마셨다. 늦게 군사들 중에서 힘센 자들을 뽑아 씨름을 시켰더니, 성복이란 자가 우승을 했다. 그래서 상으로 쌀 한 말을 주었다. 충청우후 원유남, 마량첨사, 당진만호, 홍주판관, 결성현감, 파지도권관, 옥포만호 등과 같이 활 10 순을 쏘았다. 자정에 영인(永人)이 돌아갔다.
※영인이 누구길레 진영에 들어와 2박 3일을 지나고 자정에 돌아갔을까?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재미있는 것은 그가 돌아가고나서 이순신은 9일이나 계속해 매일 목욕을 했다는 사실이다.
4월24일[5월20일] 맑음.
식사를 한 뒤에 목욕을 하고 나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4월25일[5월21일]
맑으나 남풍이 크게 불었다. 일찍 목욕탕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있었다. 저녁에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또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물이 너무 뜨거워 오래 있지 못하고 도로 나왔다.
4월26일[5월22일] 맑음
아침에 들으니 체찰사의 군관이 경상수사 진영으로 갔다고 한다. 식후에 목욕을 했다. 늦게 경상수사가 와서 만나고 돌아갔고 체찰사의 군관 오(吳)도 왔다. 김양간이 소를 실어오기 위해 본영(여수 좌수영)으로 갔다.
4월27일[5월23일] 맑음.
저녁에 목욕을 한차례 했다. 올려 보낸 공문에 대한 체찰사의 회답이 왔다.
4월28일[5월24일] 맑음.
아침과 저녁 두차례 목욕을 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다녀갔는데 경상수사만 뜸을 뜨느라 오지 못했다.
4월29일[5월25일] 맑음.
저녁에 한차례 목욕을 했다. 남녀문으로 하여금 투항한 왜인 사고여음의 목을 베게 했다.
4월30일[5월26일] 맑음.
저녁에 한차례 목욕을 했다. 우수사가 보러 왔다. 충청우후도 보고 돌아갔다. 늦게 부산의 허내은만의 고목(告目)이 왔는데, “소서행장이 군사를 철수하여 돌아갈 뜻이 있는 것같다”고 했다. 감경록이 돌아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편지가 왔다.
▶병신년(1596년) 5월
소용돌이치는 강화정국의 종말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이순신은 강화회담이 결렬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었기에 조금도 방심않고 바다를 지키는 일에 온갖 신경을 다 쓴다. 몸은 아파 끙끙 앓으면서도 통제사의 일상은 빈틈없이 계속된다.
5월1일[5월27일]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한차례 목욕했다.
5월2일[5월28일] 맑음.
일찌감치 목욕하고 진으로 돌아왔다. 쇠를 녹여 총통 두 자루를 만들었다. 조방장 감완 및 조계종이 와서 봤다. 우수사가 김인복의 목을 베어 효시했다. 이날은 공무 보지 않았다.
5월3일[5월29일] 맑음.
가뭄이 너무너무 심하다. 한산도에는 물이 말랐다. 근심되고 괴로운 맘을 어찌 다 말하랴! 경상우후가 와서 활 15순을 쏘았다. 저물어서 돌아왔다. 총통 2자루를 더 만들려 했으나 만들지 못했다.
5월4일[5월30일] 맑음.
이 날은 어머니 생신인데 헌수하는 술 한 잔도 올려 드리지 못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밖에 나가지 않았다. 오후에 전라우수사의 업무 보는 관사가 불이 나 모두 타버렸다. 이 날 저녁 문촌공이 부요(순천 주암)로부터 오면서 조종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조정이 4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슬프고 애석하다. 우후가 앞산마루에서 여귀(제사를 못받고 떠도는 귀신)에게 제사(여제)를 지내기로 했다.
*** 위 일기의 여제를 지낸 사연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조문을 지어 유행병으로 죽은 이들을 제사 지내려고 하는데, 그날 새벽꿈에 한 떼거리 사람들이 이순신 앞으로 와서 원통함을 호소했다. 이순신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오늘 제사에 전쟁에 죽은 자나 병으로 죽은 자들은 모두 얻어먹었지만 우린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순신이 “그러면 너희들은 무슨 귀신이냐?”하고 물으니 “우리는 물에 빠져 죽은 귀신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문을 다시 읽어보니 과연 그 글 속에는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이순신은 다시 주위에 명령해 그들도 함께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5월5일[5월31일] 맑음.
이 날 새벽에 여제를 지냈다.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공무를 보았다. 회령포만호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여러 장수들이 모여서 회합하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의식을 마친 다음 들어가 앉아서 위로연을 베풀고 술을 4순배 돌렸다. 몇 순배 돌리고나서 경상수사가 씨름을 시켰는데 낙안군수 임계형이 장원이었다. 밤이 깊도록 이들을 즐겁게 마시고 뛰놀게 한 것은 내 스스로 즐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오날을 맞아 오랫동안 고생한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주고 싶어서다.
5월6일[6월1일]
아침엔 흐리더니 늦게는 큰비가 내렸다. 가뭄 끝에 농민의 소망을 흡족하게 채워주니 기쁘고 다행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비 오기 전에 활 5, 6순을 쏘았다. 비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초저녁 무렵 총통 만들 때에 쓰는 숯을 쌓아둔 창고에 불이 일어나 모두 타버렸다. 이는 감독관[監官]들이 새로 받아들인 숯을 쌓으면서 묵은 불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탓이다. 한탄스럽다. 아들 울과 김대복이 같은 배로 나갔다. 큰 비가 쏟아졌는데 잘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밤새도록 앉아 걱정했다.
5월7일[6월2일]
계속 비가 오다 저녁에 개었다. 울이 이날 잘 도착했는지 몰라 계속 걱정이 된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열고 물어보니 이영남이 왔다는 것이다. 불러들여 옛날 지내던 일을 이야기했다.(이영남은 지난해 함경도 강계에서 여진족을 방비하다 이순신에게 돌아온 듯함)
5월8일[6월3일] 맑음.
아침에 이영남과 함께 이야기하고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활 10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두번이나 구토를 했다. 이 날 영산 이중(李中)의 무덤이 왜적에 의해 파헤쳐졌다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조카 완이 들어왔다. 김효성도 오고 비인(충남 서천 비인)현감도 들어왔다.
5월9일[6월4일] 맑음.
몸이 몹시 불편하여 나가지 않았다. 이영남과 함께 서관(황해도·평안도 즉 임금 계신 곳)의 일을 이야기했다. 날이 저물자 비가 뿌리더니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다. 부안의 전선(판옥선)에서 불이 났으나 심하게 타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5월10일[6월5일] 맑음.
나라 제사날(태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5월11일[6월6일] 맑음.
새벽에 일어나 이영남과 진지한 대화를 했다. 식후에 나가 공무를 보고, 비인현감 신경징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곤장 20대를 쳤다. 또 순천 격군을 감독하는 감관 조명에 대해서도 죄를 물어 곤장을 쳤다. 몸이 불편하여 일찍 들어와 신음했다. 거제현령, 영등포만호가 이영남과 같이 잤다.
5월12일[6월7일] 맑음.
이영남이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김해부사(백사림)의 긴급보고가 왔고, 부산에서 왜적에게 붙었던(附賊人) 김필동의 보고서[告目]도 왔는데 “풍신수길이 비록 정사(正使)는 없을지라도 부사(副使)가 그대로 있으니, 곧 화친하기로 하고 군사를 철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명은 정사 이종성이 달아나자 부사 양방형을 정사로 심유경을 부사로 임명해 강화를 계속했다.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