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치 않는 피해 입은 우리 역사
- 방대한 사료 활용 새 관점 제시

이 책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충격의 근원은 두 종류였다. ‘청일전쟁에 관해 정말 몰랐구나’ 하는 당혹스러운 깨침이 그 하나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고 방대하고 다양한 사료를 정리·활용하다니!’ 하는 놀라움이 충격의 발원지 또한 하나다.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조선 백성의 초가를 점령해 숙박하는 모습을 그린 종군화가 구보다 베이센의 그림. 푸른역사 제공

조재곤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펴낸 724쪽짜리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에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으로 꼽히는 ‘집대성’의 포스가 느껴진다. 그런데 기존 관점이 아니라, 아마 한국의 다수 독자가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 핵심은 다음 문장에 집약됐다.

“1894년 7월 25일 시작된 풍도 해전은 국제법적으로 독립국가였던 조선의 영해와 도서 내에서 전개된 제국주의 국가 간의 불법적인 전투의 한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청일전쟁은 일본과 중국이라는, 즉 ‘남의 나라’의 전쟁이라고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일전쟁은 한국의 영토에서 시작되었고, 당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 이 전쟁에 속박되지 않을 수 없었다.” (232쪽)

머리말에서도 한 문장 뽑아본다. “청일전쟁 시기 조선인 대다수는 일본과 청국, 그들에 좌우되었던 조선 정부에 의한 ‘3중의 쥐어짜기’ 대상일 뿐이었다. 이는 이후 러일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사람들이 경험한 청일전쟁’이라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이 필요한 이유이다.”

방대하고 다채롭고, 새로 발굴한 사료가 종횡무진하는 이 책은 철두철미 학술서이다. 대중서 또는 교양서가 아니다. 수많은 사료를 제시하고 엄정하고 냉정하게 분류·분석해 합리성을 확보하는 책이다. 그렇게 ‘냉정하게’ 구성한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인으로서 울분·슬픔·안타까움이라는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 저자가 발굴·정리·제시한 낱낱의 생생한 사료가 당시 조선 조정·지배층의 치 떨리는 무능, 전쟁은 청나라와 일본이 하는데 온갖 고생과 위험은 조선 백성이 다 떠안는 기막힌 현실이 다양한 방향에서 엄청난 용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청일전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동학농민전쟁을 진압하려고 한반도로 출동한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싸운 전쟁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진정으로 후회했다. 청일전쟁은 지금껏 좁게만 생각했던 그런 전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