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작가이자 영화제작자
- 전 세계 기묘한 서적들 소개
- 뱀 가죽으로 짠 ‘실낙원’부터
- 입을 수 있는 셔츠 모양 책까지

“사람의 살과 피로 만든 책, 거짓말만 늘어놓는 책, 비속어를 가득 모아둔 사전, 급할 때 변기로 쓸 수 있는 책, 입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책, 너무 작아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책, 너무 커서 우주를 파괴하고도 남을 책, 악마를 소환하는 책, 유령이 쓴 책, 사기 치고 벌주고 조롱하고 복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

1760년 런던의 제본 장인 생고스키와 서트클리프가 뱀 가죽을 사용해 정교하게 장정한 좀 밀턴의 ‘실낙원’ ‘복낙원’ 세트. 갈라파고스 제공

에드워드 브룩-히칭의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은 ‘책’이라는 사물의 특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기해할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이다. 이 책 자체가 기이한 책들이 빼곡히 꽂힌 도서관이다.

이상한 책들도 궁금하지만, 이상한 책을 파고드는 저자도 궁금하다. 에드워드 브룩-히칭은 영국의 작가 겸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다. 희귀 서적상 프랭클린 브룩-히칭의 아들이자, 서지학과 책 보존 역사를 다룬 책 ‘책의 적들’을 쓴 인쇄업자 겸 서지학자 윌리엄 블레이드의 후손이다. 책이라는 세계와 끈끈하게 이어지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저자는 어릴 적부터 고서와 친숙했다.

그의 저서들도 기발하다. 지도상 오류에서 비롯된 허구의 장소를 소개하는 ‘유령 아틀라스’, 사라진 스포츠 종목을 살펴보는 ‘여우 던지기, 문어 레슬링 그리고 잊힌 스포츠들’. 이 책들로 찬사를 받은 저자가 이번에는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문을 활짝 열었다. 단언컨대 책장을 펼치면 삽화와 사진에 먼저 푹 빠지게 된다. 저자가 풀어놓는 매혹적인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거대한 도서관에 들어선 것 같다.

책 속의 책 몇 권을 소개한다. ‘살과 피로 만든 책’ 편을 읽다가 위아래로 나란히 배치한 두 권의 책 사진에 눈길이 간다. “1760년 런던의 제본 장인 생고스키와 서트클리프가 뱀 가죽을 사용해 정교하게 장정한 존 밀턴의 ‘실낙원’ ‘복낙원’ 세트.” 표지며 제본 형태가 아름답다. 뱀 가죽이든 뭐든 직접 만져보고 싶다.

‘초현실 세계를 다룬 책’ 편에는 ‘부적 셔츠’가 있다. 이것은 옷인가 책인가.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안감엔 코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옮겼고 옷단에는 아흔아홉 신의 이름을 금으로 둘렀다. 무슬림은 이 옷을 입으면 몸을 지키는 힘이 깃든다고 믿었고, 전투용 갑옷 안에 받쳐 입는 용도로 만들었다.” 저자의 설명이다. 부적 셔츠의 연구 권한이 한 분야에만 주어진다면 서지학과 문헌정보학자, 종교학과 의류학 등 관련 분야의 학자들 간에 굉장한 다툼이 벌어지겠다.

‘종교계 괴서들’ 편에 ‘스미스필드 교령집’이 등장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1227~1241)의 주석이 달린 교령집의 현재까지 남아있는 필사본 중 한 권이다. 교령집의 펼쳐진 페이지 중앙에 그레고리우스 9세가 추기경들에게 둘러싸여 교령집을 배분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가 보인다. ‘스미스필드 교령집’의 626페이지 모두 삽화로 꽉꽉 들어차 있고, 글씨 또한 정교하고 아름답다.

저자는 “책에 생기를 부여하려고 시작한 일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은 필경사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까. 성스러운 작업이었으나, 극한 직업이었을 게다. 이 교령집 314번째 폴리오 오른쪽 페이지에는 끝없는 필사에 진이 빠진 필경사가 은근슬쩍 심회를 토로한 문구를 써넣었다. “다 끝났도다. 노고를 바친 자 모두에게 술을 한 잔씩 돌려라.”

아무 이유 없이 책이라는 사물 자체에 심장이 뛰는 애서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