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1000만 영화는 자란다, 한국사회의 불우함을 먹고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4-05-16 19:11:21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떤 영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일단 그것은 사회적인 사건이다. 영화의 질은 부차적인 문제다.‘ 누벨바그의 시대를 이끌었던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1932~1984)가 한 말이다. 오늘날 한국영화의 지형을 설명함에 있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나는 알지 못한다. ’서울의 봄‘(2023)과 ’파묘‘(2024)가 연이은 1000만 관객을 기록하며 극장이 소생한다는 식의 말이 넘쳐났지만, 단기적인 흥행에 쏟아지는 관심과 열광, 시장주의의 언어는 정작 바닥이 무너지고 기울어져가는 현실의 음울한 이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영화 ‘범죄도시4’ 스틸컷.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잘 만든 영화가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한국영화계는 좋은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일까? 의견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서울의 봄’과 ‘파묘’는 작가적 의도가 장르적 완성도와 적절한 균형을 이룬 웰메이드의 본보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범죄도시 4’(2024)는 어떠한가? K-콘텐츠 운운에서 잘 드러나듯, 한국 영화계의 비극적 풍경 중 하나는 상업적 성공이 곧 예술적 가치의 척도라는 식의 천박한 인식이 당연하다는 듯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장의 양극화와 다양성의 실종이라는 상식적인 얘기를 재삼 꺼내고자 하는 건 아니다.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먼저 인용한 트뤼포의 말마따나 한국영화에서 작품의 질은 조금 거드는 역할일 수는 있어도 폭발적인 성공의 핵심은 아닐지 모른다. 작품 자체의 내적 요인보다는, 영화가 대중과 현실의 민감한 지점을 건드리면서 촉발한 징후적인 사건으로 보는 편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는 ‘젠틀맨’(2022)이나 ‘거미집’(2023)과 같은 몇몇 수작의 실패를 설명할 길이 없다. 웰메이드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 ‘괴물’(2006)이나 ‘1987’(2017)처럼 1000만, 혹은 그에 가깝게 흥행한 영화의 조건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역사와 현실의 어두운 풍경, 불쾌한 기억(Trauma)을 대중의 정념에 부합하게 세련된 장르적 리얼리티로 재가공해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의 봄’과 ‘파묘’는 신군부 독재와 일제강점기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익숙한 구도이지만 동시에 참신해보여야 한다는 모순된 욕망의 지점을 파고들었다. 두 영화가 극장가를 휩쓸고 얼마 후, 정치권에선 보수 진영이 총선에 참패했다. 대중의 정서와 인식을 공유하지 않고 흐름을 역행하는 여당에 민심은 투표로 응답했다.

‘범죄도시 4’는 이전의 시리즈를 파편으로 쪼개 난삽하게 기워 맞춘 콜라주 같다. 그럼에도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는 건 영화가 폭력의 형태로 손쉬운 해결의 판타지를 안겨주며 법질서의 정상적 작동이 멈춰버린 현실에서 느끼는 대중의 정치적 무력감에 내밀히 조응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한국사회의 합리성을 믿지 않게 된 불안한 대중은 초법적인 힘의 개입을 갈망하며 마석도의 주먹에서 위안을 찾는다.

영화는 우리 시대의 거울이다. 공교롭게도 이상의 영화들은 작중에서 실패하든 성공하든, 끝끝내 해결되지 못하는 역사와 현실의 답답함에 출구를 제시하려 한다는 태도에서 공통된다. 병든 사회의 불우(不遇)를 양분 삼아 1000만 영화는 자란다. 마치 간염에 걸려 한껏 부풀어 오른 비대해진 간처럼.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6. 6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7. 7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8. 8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9. 9[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10. 10“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1. 1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2. 2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3. 3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4. 4‘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5. 5“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8. 8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9. 9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0. 10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8. 8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9. 9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10. 10캐릭터로 동심 공략하고, 어른 향수도 자극하고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5. 5“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6. 6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7. 7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2. 2“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3. 3“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송현화-Magic Air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2일 (음 9월 23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9일 (음 9월 19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