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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삶을 잠식하는가

국제신문 신춘문예 출신, 작년 심훈문학상 수상자 이화정 소설가 첫 소설집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4-05-19 19:53:0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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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을 향해 파고드는 일은 진지한 예술가의 숙명인 듯하다. 다양한 장르 많은 예술인이, 오랜 세월 예술이 그렇게 해 왔듯 시원(始原)을 돌아본다. 소설가 이화정은 사람이 살아가며 받을 수밖에,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상처’가 그런 근원에 해당한다고 보는 듯했다. 상처의 이름을 달리 말하면, 트라우마다.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최근 첫 소설집 ‘야생의 시간’을 펴낸 이화정 작가. 아시아 제공
이화정 작가는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천사의 손길’이 당선되면서 등단했고 2023년 심훈문학상을 받았다. ‘천사의 손길’은 불에 달군 쇠가 후벼판 듯한 상처를 받은 부부가 기괴한 해결방법 쪽으로 서서히 빨려드는 과정을 서스펜스 기법으로 전개했다. 신인 등용문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는 개성이 굉장히 강했다. 2023년 그가 심훈문학상을 받을 때 심사평은 “트라우마와 연결하여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깊이 있게 자아내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였다(구모룡 홍기돈 방현석 심사)였다.

작가 이화정이 첫 소설집 ‘야생의 시간’(아시아)을 냈다. 단편 일곱 작품을 실었다. ‘당신’ ‘야성의 시간’ ‘문’ ‘부겐빌리아 속으로’ ‘엄마의 진심’ ‘라스베이거스 여인숙’ ‘천사의 손길’이다.

이 작가가 정신의학 분야에 종사하거나 정신의학 영역을 줄곧 파고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이어진 몸과 마음, 정신의 상처, 트라우마, 죄책감, 성(性)에서 비롯되는 삶의 균열, 기억, 다른 것을 가져다 내면 아픔을 보상하려는 방식…. 이런 요소가 소설집 밑바닥에 두루 깔려 있다.

몸과 마음 모두에 독한 상처를 입은 두 남녀가 나오는 단편 ‘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은영은 문의 슬픈 꿈을 지켰고, 문은 잠 못 드는 은영을 재웠다. 은영은 문의 손을 느끼며 일어나는 아침에, 타인의 신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86쪽) 주인공 은영에게 ‘타인의 신체’는 늘 고통이고 억압이었다. 성과 관련한 깊은 상처 탓이다. 비록 이 소설이 은영에게 안도나 안온한 결말을 허락하지 않지만, 정신과 몸이 긴밀히 이어졌고 호락호락 파괴되지 않는 회복력도 지녔다고 이 대목은 슬쩍 비춘다.

정신과 의사 김철권 박사(동아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최근 4권으로 펴낸 책 ‘한 정신과 의사의 37년간의 기록’이 우리 사회에 던진 선명한 메시지를 짚고 싶다. 이 책 보도자료는 “우울증 환자 100만 명의 시대다”고 썼다. 우울증이 이 정도면, 우리가 잘 들어보지 못한 숱한 정신의학 관련 질환을 앓는 이는 얼마나 많겠는가. ‘야생의 시간’에 나오는 임신거부증, 치매, 트라우마와 강박, 성 관련 상처는 가까운 이야기이며 엄연하고 강력한 실재임을 알게 해준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다.

이화정은 ‘당신’에서 “그렇게 당신의 숨은 우울은 드러나고야 맙니다”(25쪽)고 말한다. 2046년 3월 시점에 팔순을 앞둔 여성 주인공 여성은 이렇게 회고한다. “저는 아픈 기억 삭제 치료인 ‘이레이저 클리닉’을 받았습니다. 왕따 성폭행 학대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게 되는 여러 가지 이유의 기억들을 추적해 지워주는 표적 치료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기억은 마음, 마음은 행동을 지배해 결국 또 다른 비극이 이어짐을 막지 못한다. 정신은 힘이 세다. 한 번 더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이 소설집은 떠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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