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0> 바다 달팽이, 군소

바다 달팽이·토끼 별칭…제사상에도 오른 단짠쌉싸름 별미 해산물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6-11 19:05:37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얕은 수심 해조류 군락서 서식
- 독성 있는 내장 깨끗이 제거 뒤
- 숙회나 데쳐서 먹어…5~7월 제철
- 독특한 향과 쫄깃한 식감이 일품
- 해안가선 대소사에 챙기는 음식

영도에 살던 어린 시절, 사시사철 우리 또래의 놀이터는 바다였다. 특히 영선동 영선아파트에 살았던 터라 ‘이송도’ 앞바다는 우리의 안마당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흰여울마을’ 아래 바다를 일컫는다. 하루 종일 천둥벌거숭이로 뛰어놀다가 배가 고프면 깡통에 고둥 담치 성게 따개비 등을 넣고 삶아 먹었다. 몇몇 수영 잘하는 친구들은 멍게나 해삼 등을 채취해 술추렴 하는 어른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숙회가 내키지 않을 때 야채와 무쳐서 새콤달콤하게 즐기는 군소무침.
바다에서 온종일 멱을 감고 바윗돌 사이를 뒤집다 보면 다양한 갯것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에 심심찮게 보이던 것 중 하나가 ‘군소’다. 당시 우리는 ‘군수’라고 불렀는데,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에 큰 달팽이처럼 생겼다. 얼핏 보면 머리에 뿔처럼 생긴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어 토끼를 닮기도 했다. 만지면 연체동물처럼 물컹거렸고 곧이어 몸에서 보랏빛 색소를 진하게 뿜어내곤 했다. 그 색감이 참으로 고와서, 맑은 바닷물에 은은하게 번져가는 군소의 색소를 한참 동안 지켜보기도 했다.

이웃 친구는 이 군소를 잡으면 잡는 족족 집으로 가져갔다. 이 친구 집에서 그의 어머니가 데쳐준 군소 숙회를 생전 처음 맛보았다. 쌉싸래한 맛과 약간의 비린내, 스펀지를 씹는 듯한 식감까지, 어린아이에게는 썩 내키지 않는 맛의 기억이었던 것 같다.

■위협 받으면 보라색 독소 뿜어

바닷속 군소. 국제신문 DB
군소는 분류학상 연체동물문 복족강 생물이다. 연체동물이며 헤엄을 치는 대신 바다 밑을 천천히 기어다니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주로 얕은 수심의 해조류 군락에 서식하면서 이 해조류를 먹이 삼아 살아간다. 몸의 색깔은 짙은 갈색이나 팥죽색을 띠고 있고, 하얀색 반점이 전체적으로 번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소, 말군소, 검은테군소, 안경무늬군소, 큰안경무늬군소, 가시군소, 원뿔군소 등이 서식하고 있다는데 바닷사람들은 보랏빛 색소를 내뿜는 ‘군소’를 ‘참군소’로, 갈색을 띠는 ‘말군소’를 ‘개군소’로 부른다. 이 두 군소가 개체수도 많고 주로 채취하는 종류이다. 그중 ‘참군소’로 불리는 ‘군소’가 맛이 좋고 활용도도 높다.

군소는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독이 있는 보라색 색소를 내뿜는다. 이 색소에는 독이 있어 포식자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식재료로 쓸 때도 이 색소를 잘 제거하고 조리해야 안전하다. 서양에서는 이 군소의 보라색 색소를 이용해 옷감을 염색하는 염료로 쓰기도 했다고.

‘자산어보’에서는 군소를 ‘굴명충(屈明蟲)’이라고 소개하면서 ‘형상은 알을 품은 닭과 같다. 고양이 귀와 같은 귀가 있다. 배 아래는 해삼의 발과 같아 헤엄을 칠 수가 없다. 색은 짙은 흑색이며 적색 무늬가 있다. 영남 사람들이 먹는다’고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군소를 지역에 따라 달리 불렀는데, 경상도에서는 ‘군수’, 전라도에서는 ‘굴멩이’, 제주에서는 바다의 돼지처럼 생겼다고 ‘물 도새기’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Sea hare, ‘바다의 산토끼’라는 뜻이다. 이는 군소의 머리에 있는 촉각과 후각을 느끼는 더듬이가 산토끼의 귀와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남해안 사람들은 ‘별주부전’의 토끼가 용왕에게 간을 내어주고 바다에 눌러앉았는데, 이 토끼가 군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군소는 해조류가 군집한 바위에 노란색이나 주황색의 알을 낳는데, 생김새는 마치 라면 면발처럼 꼬불꼬불하다. 3~7월이 산란철로 한 번에 1억 개 이상의 알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산란한다.

■숙회 무침 조림 산적으로 즐겨

시장에서 판매하는 군소. 데쳐서 먹기 좋게 썬 다음 회 초장이나 소금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좋다.
군소는 5~7월이 제철로 이 시기에 가장 맛이 좋다. 내장과 알 색소 등에 독이 있어 이를 깨끗하게 제거하고 여러 번 씻어서 삶거나 데치는 방법으로 식용한다. 군소는 그 크기가 20~40㎝에 이르기도 하는데, 데치면 달걀 크기 정도로 확 줄어든다. 몸의 90%를 차지하는 수분이 다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남해안 바닷가 사람들은 데치거나 삶은 군소를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해 먹는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음식은 ‘군소 숙회’. 군소를 먹기 좋게 썰어서 회 초장이나 소금 참기름장에 바로 찍어 먹는다. 독특한 향과 폭신한 식감, 약간 쓴 뒷맛 등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한번 맛 들여놓으면 끊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군소의 독특한 맛 때문에 군소 숙회가 내키지 않을 때는 제철 채소와 함께 회 초장으로 무쳐 먹을 수도 있다. ‘군소 무침’이다. 새콤달콤한 회 초장 맛과 채소의 아삭하고 싱그러운 향이 잘 어우러져 군소의 쓴맛을 중화시켜 준다. 오이 무 당근 등을 함께 썰어 넣고 새콤하게 ‘군소 초회’로 먹기도 한다.

오래 두고 먹고 싶으면 간장으로 졸여서 먹을 수도 있다. 데쳐놓은 군소 10여 마리를 반으로 갈라서 간장 물엿 참기름 후추 등으로 만든 조림장을 넣고 불에 졸여주면 된다. 이 군소 조림은 입맛 없을 때 밥반찬으로 제격이거니와 술안주로도 아주 좋다. 폭신폭신하면서도 쫄깃함이 살아있고, ‘단짠단짠’에 쌉싸름함 또한 더해지니 어른 입맛에 안성맞춤의 음식이다.

군소는 주로 남해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산적으로도 조리한다. 데친 군소를 양념간장에 재웠다가 나무 꼬치에 꿰어 번철에 지져낸다. 군소 산적은 해안가 사람들에게는 아주 다양한 행사에 소용되던 음식이었다. 집안의 대소사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혼례 회갑 등의 잔치나 상제 등에도 요긴한 음식이었는데, 제사상에는 특히 소홀히 할 수 없는 제물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부산에는 기장 전역의 해안을 비롯해 영도 중리, 송도, 다대포 등의 해녀 촌이나 활어시장 등에서 해녀들이 바로 먹을 수 있게 데쳐놓은 군소를 팔고 있다. 그래서인지 부산 해녀 촌에는 즉석에서 군소를 쓱쓱 썰어놓고는 회 초장에 푹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이들은 푸른 바다를 보며 달콤쌉싸름한 ‘군소 숙회’를 먹는 즐거움이 예사롭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송도해수욕장 인근 해녀 집은 문어 한 마리를 통째 숙회로 주문하면 ‘군소 숙회 무침’ 한 접시를 서비스로 주기도 한단다.

남해안 해조류가 있는 어디에서나 흔히 보이던 연체동물 군소. 오래전부터 개체 수가 많고 흔했기에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온 서민 향토 식재료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개체 수가 줄고 즐겨 먹는 이들도 별로 없어, 해녀 촌에서나 먹는 별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즈음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3. 3‘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4. 4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5. 5“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6. 6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7. 7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8. 8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9. 9방호복·지뢰덧신 살펴보는 국회 국방위원들
  10. 10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1. 1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2. 2“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3. 3“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4. 4李 지지율 2주째 상승 37.9%…양당 지지도 오차범위 접전
  5. 5여야 만난 강신철 국방부 장관 “北 지뢰 확인 땐 상응 조치…은폐 없다”(종합)
  6. 6靑 재제청 요구 거부 조희대 “국감서 밝히겠다”(종합)
  7. 7부산시 ‘도시계획’ 조직개편 여파…시의회 상임위 간 신경전
  8. 8‘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 유승민 딸, 입건없이 10개월째 수사만
  9. 9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10. 10한동훈 ‘지뢰폭발’ 대여공세 주도…복당론 선긋는 장동혁과 대립각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3. 3안주고 덜준 보험금, 5년간 1000건 육박
  4. 4HJ중공업 조선업계 첫 올해 임단협 타결
  5. 53년물 국고채 4.1% 돌파…美 금리 급등 여파
  6. 6빚 갚으려고 또 빚…카드론 대환 23%↑
  7. 7“금융위 경험·네트워크로 부산 금융생태계 강화”
  8. 8부산 유주택 신혼 반토막…‘6억 초과’ 보유는 2.5배 급증(종합)
  9. 9시중銀, 부울경 전략산업 금융 확대…지역銀 영역침범 우려도
  10. 10AI로 ‘해상 교통 혼잡도’ 예측한다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3. 3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4. 4“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5. 5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6. 6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7. 7약발 없는 바가지 대책…인센티브·숙박세로 실효성 키워야
  8. 8김해 아이돌봄 대기 5개월…부모 속타네
  9. 9부산대 양산캠 유휴부지, 양산시도 나섰다…개발 TF 꾸려 대응
  10. 10약사 면허 빌려 28억 부당이득…환수 거부에 法 “토해내라” 쐐기
  1. 1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2. 2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3. 3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4. 4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5. 5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6. 6안세영, 천위페이도 가볍게 압승…결승 진출
  7. 7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8. 8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9. 9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10. 10[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아카데미 직행표’ 두고 세계 13편 경쟁…12편 프리미어 상영
한국문학관 기행
부끄러움 없는 삶, 오늘 우리에게 성찰을 던지는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소윤-sky above,river below,and birds between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9일 (음 8월 19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8일 (음 8월 18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추석 때 사람들 만나 술 마시며 시 읊은 조선 중기 권벌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