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퍼펙트 데이즈’ 삶의 성실성에 깃든 영화의 존재론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4-07-11 19:08:09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도쿄-가’(1985)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유산을 답사하며 헌정사를 바친 바 있던 빔 벤더스는 ‘퍼펙트 데이즈’(2023)에선 현대 도쿄를 무대 삼아 한 소시민의 일상 드라마를 찍는다. 칸영화제 공개 당시 인터뷰에서 스스로 오즈의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1962)이 만들어지고 60년이 지나 촬영한 작품이라는 의의를 밝힌 바 있고, 주인공의 성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도 ‘동경 이야기’(1953)에서 류 치수가 연기한 배역을 따라 지은 것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 컷.
허우샤오시엔이 쇼치쿠 영화사의 제작에 현지 로케이션으로 ‘카페 뤼미에르’(2003)를 찍었듯, 벤더스 역시 오즈의 세계에 한 줄 주석을 더하고자 이 영화를 만든 셈이다.

‘만춘’(1949)부터 두드러진 오즈의 영화적 정수는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의 풍경을 소묘하고, 그 안에 처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낄 법한 감정의 여운, 생활의 감각에 동참케 해준다는 데 있다. 다른 방식으로 촬영하지만 벤더스는 오즈의 정신을 정확히 알고, 그에 필적할 공감각적인 순간들을 창조해 낸다.

영화의 카메라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여과 없이 따라간다. 빗자루 소리에 잠이 깨면 출근해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고, 공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점심을 해결하는가 하면, 퇴근 후에는 목욕과 술 한잔으로 그날의 때를 씻어내고 잠이 들기 전 독서로 일과를 마무리한다. 사소한 순간이 모여 하루를 이루고,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가 도돌이표처럼 끊임없이 반복돼 다리 아래 흐르는 스미다강의 고요한 물결처럼 삶의 시간은 이대로 평온히 흘러갈 것만 같다.

수행에 매진하는 승려를 방불케 하는 히라야마의 규칙적인 생활을 밀도감 있게 그려내면서, 영화는 매 순간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일의 충만함을 만끽케 한다.

동료 청소부인 타카시는 변기를 구석구석 꼼꼼히 청소하는 그를 두고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라며 투정한다. 이러한 삶의 성실성은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일본적 삶의 한 이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매일 맞이하는 삶의 순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소중히 대하는 히라야마의 태도에는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가 깃들어 있다.

블루칼라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히라야마는 올드팝을 즐겨듣고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를 탐독하는, 언뜻언뜻 교양인 면모를 내비치는 묘한 인물이다. 분재를 가꾸고,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그의 문화적 취향은 온통 옛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낡아서 사라져가는 지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今度は今度, 今は今)이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이 사는 세계가 머잖아 무너질 것을 알고, 그러기에 덧없이 스러져가는 삶의 순간을 영원처럼 붙잡으려 한다.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을 다락에 보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진이란 이미지를 통해 스쳐 지나가는 현실의 그림자(影), 찰나의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예술의 형식 아니던가? 사진 한 장마다 삶의 희로애락이 있고, 차곡차곡 쌓인 이미지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 한 편의 서사시를 완성한다. 우리는 그것을 ‘영화’라 부르며 때로 눈물짓고, 때로는 환희에 젖으며 지켜볼 것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빔 벤더스가 그리는 우리 시대 영화의 존재론인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2. 2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3. 3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4. 4“한국 핵 잠수함·전작권 전환, 美 민주 승리로 제약 커질 듯”
  5. 5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6. 6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7. 7‘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8. 8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9. 9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10. 10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3. 3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4. 4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5. 5곽규택 “산은, 대한항공이 통합 LCC 부산 설립 거부시 호반지원해야”
  6. 6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7. 7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8. 8양당 모두 400억 토해낼 위기..선거법 개정 화두로
  9. 9부울경 全 국회의원 회생촉구 서명…노동청, 지광 출석 요구
  10. 10“왜 사회적 지탄 대상 되려하나” 김대식, 지광에 회생 동의 촉구
  1. 1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2. 2‘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3. 3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4. 4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5. 5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6. 6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7. 7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8. 8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9. 9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10. 10부산 ‘에이지테크’ 해외 노크…日 시니어 시장 진출 길 열어
  1. 1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2. 2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3. 3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6일
  7. 7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8. 8문 전 대통령 거제생가 복원, 진통 끝 시의회 통과
  9. 9김해·전주시장 “특례시 기준 낮춰달라”
  10. 10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5. 5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알쏭달쏭 한자어 오독 소동 外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4일 (음 9월 2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