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31> 조운선 침몰의 수사기록

세곡 1607석 옮기던 배가 사라졌다…조선시대 출몰한 ‘세금 도둑’ 이야기

  • 고지용 국립해양박물관 전시기획팀 학예사
  •  |   입력 : 2024-08-21 18:31:43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세금 도둑’이라는 말이 신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요즘은 세금을 엉뚱한 곳에 낭비할 때 주로 세금 도둑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세금으로 낸 쌀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운(漕運)’ 즉 물길을 이용해 세금을 옮겼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이런 세금 도둑들은 조선시대 내내 끊이지 않았다.
당시 가장 대담한 절도 방법은 조운선 ‘고의 침몰’이었다. 세금 도둑들은 세곡(稅穀)을 팔아 버린 뒤 배를 침몰시켜 훔친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정부는 고의 침몰이 입증되면 관련자를 사형시킨다고 경고했지만,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듯이 처벌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 ‘조행일록, 서해바다로 나라 곡식을 옮기다’에서 전시 중인 조운선 침몰에 관한 수사기록(이하 사안(査案)·사진)은 ‘나는 자’였던 세금 도둑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사안’은 1880년 음력 6월, 경상도 좌조창(左漕倉, 현 경남 마산합포구)의 세곡 1607석을 싣고 서울로 가던 배 한 척이 흥양현(현 전남 고흥군)에서 침몰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수사 내용에 의하면 흥양현에 정박해있던 좌조창의 배는 강풍을 맞아 표류하다 불타 없어졌다. 물론 바닷길로 세금을 옮기다 보니 침몰 가능성은 늘 있었지만, 이 사건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출발한 시기가 수상했다. 경상도 조운선은 3월 중순에 출발하여 5월 중순에 서울에 도착해야 했다. 태풍 부는 시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좌조창의 배는 음력 6월, 태풍의 위험이 한창일 때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강풍에 휩쓸려 닻이 끊어졌고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당시 세금 도둑들은 미리 세곡을 빼돌리고 위험한 시기에 조운선을 몰아 침몰시킨 뒤 자연 재해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곤 했다. 그렇기에 수사 담당자도 사건의 고의성을 강하게 의심했다.

무엇보다 쌀을 한 톨도 건지지 못했다는 점이 의심스러웠다. 대개 조운선이 침몰하면 쌀을 건져 내는 과정에서 빈 쌀가마라도 찾아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세곡을 미리 빼돌리고 배를 불태워 증거를 없앤 것은 아닐까. 의심에 불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뱃사공의 진술이었다. 사공 배치신은 배 주인인 손치도가 세곡 1607석 중 900석을 빼돌렸다고 증언했다. 그러니 더욱 고의 침몰로 의심됐지만, 수사 담당자는 혐의를 증명할 수 없었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진술만으로는 고의 침몰로 단정할 수 없었다. 결국 ‘사안’은 속 시원한 결말 없이 상급 기관의 추가 수사 지시로 끝을 맺는다.

뒷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현재의 세금 도둑들은 어떤 방법을 쓰고 있을까? 시대는 발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돼지국밥 톱3 ‘민락동 수변최고·신평동 영진·용호동 합천’…미식 열기 펄펄
  2. 2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3. 3“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4. 4금감원 공공기관 재지정되나…쇄신안 수위 부산이전 분수령
  5. 5고향사랑기부금 왜 받았나…한 푼도 활용 않는 기초단체들
  6. 6“‘재정빨대’ 사과 바라시니 사과” 秋 순직 소방관 빈소 발언 파장(종합)
  7. 7시민공원 인근 또 오염토 나왔다…이번엔 중학교 이전 부지
  8. 8지역사회 ‘국제신문 회생인가’ 법원에 탄원
  9. 9돌아온 ‘캪틴큐’, 한정판 위스키…편의점 취향저격 ‘酒목’
  10. 10북항환승센터 ‘3.3m 단차’ 갈등, 법원 조정안 확정으로 봉합 수순(종합)
  1. 1“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2. 2“‘재정빨대’ 사과 바라시니 사과” 秋 순직 소방관 빈소 발언 파장(종합)
  3. 3퐁피두 중단에 국힘 박수영 1인 시위…시민사회 “토건 논리 부활 시도” 반발
  4. 4이 대통령 지지율 3주만에 반등한 37.3%…민주 36.2%·국힘 40.9%
  5. 5박철우 서울공소청장 “李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검토한 적 없다”
  6. 6李 “부마와 5·18정신, 헌법에 담아야” 국회 논의 촉구
  7. 7[속보]‘재정 빨대’·사과 논란 추미애, 국감서 소방관들에게 재차 사과
  8. 8김민석 ‘조희대 탄핵’ 밀어붙이나…국힘 “강행 땐 李 마지막 날”
  9. 9국감 후반 ETF·부동산 사찰 의혹 쟁점…김현지 증인 채택 두고는 여야 신경전
  10. 10국힘 박수영, 퐁피두 백지화에 1인 시위…”도시 경쟁력 높일 기회 날려“
  1. 1부산 돼지국밥 톱3 ‘민락동 수변최고·신평동 영진·용호동 합천’…미식 열기 펄펄
  2. 2금감원 공공기관 재지정되나…쇄신안 수위 부산이전 분수령
  3. 3돌아온 ‘캪틴큐’, 한정판 위스키…편의점 취향저격 ‘酒목’
  4. 4북항환승센터 ‘3.3m 단차’ 갈등, 법원 조정안 확정으로 봉합 수순(종합)
  5. 5국제선 유류할증료 또 인상
  6. 6[뭐라노] ‘가덕’ 공사비 상향 문서화 갈등…11월 착공 불투명
  7. 7리밸런싱 유예 ‘부메랑’…국민연금 100일새 182조 증발
  8. 8‘AI 드론’으로 참치떼 찾는다…수산업 AX 대전환 본격화
  9. 9우리 아이 가을 옷 고민 끝…신세계센텀, 키즈웨어 팝업
  10. 10기후부 지원금 다른 잣대…변전소 되고 발전소 안 되고
  1. 1고향사랑기부금 왜 받았나…한 푼도 활용 않는 기초단체들
  2. 2시민공원 인근 또 오염토 나왔다…이번엔 중학교 이전 부지
  3. 3지역사회 ‘국제신문 회생인가’ 법원에 탄원
  4. 4경남도, 추가 교육지원청 신설 대신 제2청사로
  5. 5동남권 최초 외국교육기관, 19일 명지서 착공
  6. 6“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7. 7부산 서구 산복도로 노후 주택가 주차난 환경개선 3곳 추진
  8. 8[한 손 뉴스] 12·12 때 숨진 김오랑 중령, 고향 김해에 추모공원 조성
  9. 9해임 억울해 모금한다더니…초등제자 성추행 벌금 납부(종합)
  10. 10‘법조 파트너’ 격상돼 로펌행…수사정보 유출 ‘카르텔’ 우려
  1. 1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2. 2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3. 3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4. 4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5. 5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6. 6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7. 7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8. 8[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9. 9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10. 10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물극필반(物極必反)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강동윤-Pixelated Oasis
윤상건-Creatur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경비원 /박필상
자화상 /최은지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9일 (음 9월 9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5일 (음 9월 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유배객 자암 김구의 눈에 비친 남해의 가을 바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비 오는 가을밤에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