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8> 진주화반(晉州花飯)

대접 속에서 어여쁘게 피었구나! 상생·화합으로 슥슥 버무린 꽃밥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10-15 19:10:44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기생 교육·관리한 옛 교방청서
- 연회음식으로 내 놓던 비빔밥
- 가까운 우시장서 육회 떼 얹어

- 나물 고기 고추장 한데 어울려
- 마치 음양오행 오방색 품은듯
- 얼큰한 선짓국 곁들여 여운을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우면 꽃밥일까? 먹는 내내 그윽한 향기가 날 것 같고, 밥상을 물릴 때까지 화사한 꽃밭을 거닐 것 같은 음식. 진주비빔밥 이야기이다. 진주비빔밥을 일컬어 한때 꽃밥, 화반(花飯)이라고 불렀다. 음식을 담은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 꽃장식 소반을 연상케 해 화반(花盤)이라고도 한다.
진주비빔밥은 색색 나물과 해조류, 소고기, 흰밥 빛깔이 어우러져 꽃처럼 예쁘다고 화반(花飯), 그러니까 꽃밥이라고도 했다. 진주비빔밥은 매력 넘치는 진주의 음식이며 문화유산이다.
주로 제철에 나는 색색의 나물이나 해조류를 흰밥 위에 정갈하게 얹고, 그 위에 붉디붉은 소고기로 꽃봉오리처럼 마무리 장식을 한다. 이 때문에 갖은 맛깔이 알록달록 피어오르는 일곱 가지 보석을 거느린 꽃밥,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 음식에 바치는 이름으로는 최대의 찬사라 하겠다.

그래서 진주비빔밥을 비비다 보면 우리 산하의 사계절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난분분 난분분, 춘흥에 못 이긴 강아지 마냥 봄의 꽃잎이 봄바람에 흩날리고, 푸릇푸릇 짙은 녹음 속 쟁쟁한 풀벌레 소리를 내도록 듣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새 가을 단풍에 제 마음마저 붉게 물드는 여인의 마음을 읽어내기도 하고, 흰 눈발 날리는 겨울 눈길을 묵묵히 걷는 나그네의 발길을 좇기도 하는 것. 이런 산수화 같은 우리 전통의 맛깔을 들여다보는 묘미, 진주비빔밥을 먹는 시간이다.

■겸양·상생·조화의 음식

비빔밥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담은 음식이 있을까? 밥 위에 어떤 찬과 비벼도 잘 어울리는 음식, 앉아서 먹든 서서 먹든 어디서든 설렁설렁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식사, 여럿이서 둘러앉아 식구(食口)처럼 함께 먹던 공동식, 그리고 노동의 시간에 짬을 내어 허벅허벅 먹는 노동식. 그래서 비빔밥은 우리 민족에게는 다양한 용도로 소용되던 음식이었다.

예로부터 비빔밥은 ‘3대 미덕’의 음식이라 했다. 나물이면 나물, 육회면 육회, 고명이면 고명… 음식 재료들이 서로 제각각의 맛깔을 내므로 ‘개성’의 음식이다. 그리고 각각의 개성적인 맛이 고루고루 모여, ‘비빔밥’이라는 한 가지의 특성을 구현하기에 ‘화합’의 음식이다. 또한 개개의 맛과 성정들이, 하나의 맛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순화하므로 ‘순화’의 음식이다.

그래서 ‘비빔밥’은 ‘겸양의 음식’이자 ‘상생의 음식’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를 닮은 ‘배려와 다양성’의 음식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골동반(骨董飯), 여러 음식이 ‘한데 섞여’ 맛과 영양의 조화가 서로 돋보이는 ‘조화로움’의 음식이기도 하다.

비빔밥 중에서도 최고의 호사는 소고기 육회를 얹은 것이겠다. 각색의 제철 나물을 넣고 비빈 비빔밥이 서민의 음식이었다면, 붉은 소고기 육회 넉넉히 올려 비벼 먹던 소고기 육회 비빔밥은 상류 계층의 귀족 음식으로 분류됐다.

전국에서 소고기 육회를 고명으로 올려 만든 비빔밥 중 대표적인 것이 경남 진주 칠보화반과 전북 전주 육회비빔밥, 전남 함평 생고기비빔밥 등이다. 세 지역은 오래전부터 주변에 큰 우시장이 있던 곳으로, 각각의 음식문화에 맞게 독특한 형식의 소고기 비빔밥을 발전시켜 왔다. 그중에서도 진주비빔밥은 비빔밥에 올라간 색색의 고명들이 마치 꽃처럼 아름답고 맛이 뛰어나 조선 시대 당시 진주 교방청의 대표 음식이기도 했다.

진주는 조선 시대 진주목(晋州牧)이 소재했던 경남의 행정 군사 문화 중심지였다. 그러했기에 기생을 교육·관리하는 교방청(敎坊廳)이 설치됐고, 교방청에서 비롯된 교방 문화가 현재 진주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교방 음식문화인데, 조선 시대에는 중앙관리가 한양에서 내려오면 이들을 접대하기 위한 연회가 베풀어지곤 했다. 이때 기생들의 가무와 함께 진주 교방청의 연회 음식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그 중심에 ‘칠보화반’이라 일컫는 ‘진주비빔밥’, 해물 육수 향이 진한 ‘진주냉면’ 등 교방 상차림 음식이 있었다.

■자부심 ‘화관’ 얹듯, 다채로운 맛

진주비빔밥에 꼭 곁들이는 선짓국.
원래 진주비빔밥의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군관민이 소를 잡아 다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설과 교방청의 연향 음식으로 시작됐다는 설, 농번기 때 함께 먹던 두레음식에서 시작됐다는 설 등 다양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진주비빔밥 가게는 3대에 걸쳐 100년 안팎의 가업을 이어오는 한 노포가 국내 최고 오래된 비빔밥집으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이 식당을 통해 그나마 진주비빔밥 문화의 저간을 찾아볼 수가 있겠다.

진주비빔밥 한 상 받는다. 넓은 그릇에 흰 쌀밥을 담고 애호박 고사리 숙주 얼갈이배추 마른김 자반(속대기) 등을 보기 좋게 얹었다. 그릇 앞쪽으로 조물조물 잘 양념한 육회가 자리하고, 비빔밥 그릇 중앙에는 직접 담근 고추장을 올려 마무리했다.

비빔밥의 고명이 마치 우리 민족의 음양오행 사상을 대표하는 상서로운 색, 오방색을 품고 있는 듯하다. 희고 검고 붉고 푸르고 노란색의 대비. 각각의 색깔마다 방위와 기운을 나타내고 계절을 품고 있기도 하다. 이 오방색을 비빔밥 속에 다 구현해 놓았으니, 그 음식의 함의가 참 대단한 것이다.

젓가락으로 몽글몽글 밥을 비빈다. 각각의 재료가 섞이고, 각각의 맛이 하나가 된다. 알록달록한 음식 재료들이 각각의 맛과 식감으로 풍성하다. 한 숟갈 크게 입에 넣는다. 구수하다. 연이어 다양한 식감의 향연이 펼쳐진다. 여기에다 비빔밥의 맛과 풍미를 올려주는 보탕국을 넣어 제맛을 더해준다. 보탕국은 바지락이나 홍합 등 조개류를 참기름에 볶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진주비빔밥은 고소하면서도 촉촉하고, 담담하면서도 진득하다. 비빔밥 한 숟가락 뜰 때마다 들큼하고, 맵싸하고, 짭짤하고, 쌉싸래하고, 부드럽고, 아삭하고, 푸들하고, 고들하고… 모든 맛이 하나같이 개성적이면서도 튀지 않고 잘 어울린다.

진주비빔밥에는 얼큰한 선짓국이 함께 나온다.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고기는 육회로 올리고, 나머지 내장 및 부산물로 선짓국을 끓여내는 것이다. 일반 선짓국보다 맑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살코기와 선지 간 허파 천엽 내장을 넣고 푹 끓여낸 국물에 사박사박 썬 무와 콩나물 대파가 들어가고, 그 중간에 큼지막한 선지가 한 덩이 자리를 차지한다. 한 술에 심심하면서 깔끔한 국물 맛이 입맛을 부드럽게 해주고, 곧이어 진하고 시원한 맛이 올라오더니 칼칼한 뒷맛으로 여운을 남긴다.

비빔밥 식사 후에는 간단히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을 위해 소고기 석쇠불고기를 한 접시 더할 수도 있다. 석쇠에 구워서 진한 불 향이 입맛을 돋우고, 고기마다 육즙을 가득 머금어 고소하고 진한 풍미가 제대로이다. 비빔밥과 함께 곁들여 먹어도 좋겠다.

오랜 세월 진주 사람들의 음식문화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음식, 진주비빔밥. 진주 사람들은 그들 음식의 자부심을, 그들의 음식 이름에 화관(花冠) 얹듯이 올려놓았다. 말 그대로 ‘꽃밥’ ‘진주화반’이다. 그들의 음식 사랑이 참 부럽고 기꺼울 따름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현금 쌓아놓고 34억 체납 지광(국제신문 대주주), 국세청 나서라”(종합)
  2. 2분당 라면 600개…농심 부산수출공장 가동
  3. 3與 부산 지역위원장 출신, 공공기관 임원 잇따라 꿰차
  4. 4영도 해양박물관 앞 산책로, 넉달째 쑥대밭
  5. 5국제신문 회생, 민주노총과 연대…부산 女NGO·사하구의회 힘보태
  6. 6창원 제2국가산단 3년 표류 마침표?
  7. 7李 ‘친노 중용’ 승부수…여권 통합·PK 공략 두 토끼 잡기
  8. 8밤바다에 핀 불꽃 8만 송이…120만 명 홀렸다(종합)
  9. 9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10. 10대원 물릴까, 10초 고뇌 끝 불길 속으로…항공기 폭발 막아
  1. 1“현금 쌓아놓고 34억 체납 지광(국제신문 대주주), 국세청 나서라”(종합)
  2. 2與 부산 지역위원장 출신, 공공기관 임원 잇따라 꿰차
  3. 3李 ‘친노 중용’ 승부수…여권 통합·PK 공략 두 토끼 잡기
  4. 4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5. 5장외로 나간 국힘 “李, 본인 사건 특검 임명…끌어내려야”(종합)
  6. 6“주민자치회 활성 위해 獨·스코틀랜드와 같이 정책반영 기반 필요”
  7. 7與 “내란잔당 국힘 후안무치…탄핵 거론 제정신 아냐”
  8. 8국힘 “이용철, 대장동 숨은 설계자” 민주 “법조 베테랑…법무장관 적격”
  9. 9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10. 10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1. 1분당 라면 600개…농심 부산수출공장 가동
  2. 2밤바다에 핀 불꽃 8만 송이…120만 명 홀렸다(종합)
  3. 3HUG 10개월 만에 또 수장 공백…당분간 대행체제 불가피
  4. 4정지선 훠궈, 전주 명물 칼국수…롯데百 맛집에 외국인도 줄선다
  5. 5외국인, 올해 1~9월 부산서 카드 1조원 넘게 썼다(종합)
  6. 6국산화·지역 상생 앞세워 해상풍력 박차
  7. 7해군·해병대 AX 거점, 부산에 ‘둥지’
  8. 8신세계 센텀 ‘라이다’ 팝업 오픈
  9. 9‘블루 쓰나미’ 충격 여전…美기술주 반등에도 코스피 안갯속(종합)
  10. 10폭락장 반대매매 막아라…신용융자 담보비율 의무 면제(종합)
  1. 1영도 해양박물관 앞 산책로, 넉달째 쑥대밭
  2. 2국제신문 회생, 민주노총과 연대…부산 女NGO·사하구의회 힘보태
  3. 3창원 제2국가산단 3년 표류 마침표?
  4. 4대원 물릴까, 10초 고뇌 끝 불길 속으로…항공기 폭발 막아
  5. 5부울경 비 내리며 기온 뚝(종합)
  6. 6[한 손 뉴스] 기장 문오성마을 어르신들, 트롯그룹 결성 자작곡 발매
  7. 7고령면허 자진반납땐 최대 30만 원…7534명 ‘응답’
  8. 8광안동 인도 돌진 벤츠 운전자 2심 법정구속
  9. 9탐방 허용-자연보전 통제 ‘절묘한 균형’…100년 지킨 원칙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9일
  1. 1“국제신문 골프대회, 아마추어 골프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 되길”
  2. 2남자부 A조 어정우 씨 “뜻밖의 우승…양산과의 인연 감격”
  3. 3가을이 물든 필드…아마골퍼 300여 명 ‘열정·화합의 샷’
  4. 4여자부 우승자 황은경 씨 “매번 새로워…건강하게 오래 즐기고파”
  5. 5남자부 B조 홍정삼 씨 “퍼트 감각 빛나…목표는 A부 우승”
  6. 6삼성,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통산 9번째 우승
  7. 7‘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8. 8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9. 9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10. 10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재일동포들 고국 그리며 전승한 예술, 부산서 원없이 펼쳤다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알쏭달쏭 한자어 오독 소동 外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변대용-The Flowers’ Stroll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9일 (음 10월 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다고 읊은 당나라 두목의 시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