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층이 질곡의 역사로 끌고가
- 민중관점으로 바꿔 다르게 해석

김학준 저자의 첫 책 ‘조선 500년의 거짓말’은 먼저, 조선 역사에 관해 굳어진 기존 통념 안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질문을 자꾸 던지고 근거를 내놓으며 관련한 연구 동향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어 유익했다. 예컨대 조선 전기 서로 대립하며 나라의 운명을 가른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은 서로 확연히 다른 집단이라고 기성세대는 배웠다. 이 책 제2부 사림(士林), “세속을 뛰어넘은 고결한 선비였다”는 거짓말에서 저자는 정황을 상세히 살피고는 이렇게 판단한다.

동래야류 한 장면. 이 놀음에서 지체 낮은 말뚝이가 양반을 놀리고 나무란다. 국제신문 DB

“그러니까 대다수 사림은 이전 시대의 훈구 대신들과 정치·사상적으로 같은 지향을 가졌던 겁니다. 따라서 16세기 이후 사림 사회의 주류적 가치를 진보로 분류하고, 그들을 제외한 소수를 보수 성향의 양반 사대부로 파악한다면, 이는 큰 잘못입니다.”(141쪽) 이렇게 놓고 보니, 훈구와 사림의 육박전·각축전에 관해 읽으면서도 뭔가 개운하게 풀리지 않던 의문이 졸가리를 드러내며 조리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흔히 한국인이 ‘임오군란’이라고 표현하는 역사 사건 또한 저자는 그렇게 부르면 본질을 알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 사건의 전모·원인과 큰 규모를 상세히 따라간 뒤 그는 ‘임오년 군민항쟁’으로 고쳐 표현한다. 그 대목을 읽어보면 설득력이 있다. ‘홍경래의 난’ 또한 저자는 “홍경래 개인의 싸움이 아니었다”며 ‘평안도 민중항쟁’을 제시한다.

홍경래의 난이라고 규정하면 홍경래 개인이 강조되고, 평안도 민중항쟁이라고 지칭하면 평안도에 누적된 그때의 지역 모순·차별과 민중이라는 주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배층이 ‘홍경래의 난’이라는 네이밍을 택한 이유가 이 대목에서 한결 또렷해져 버린다.

김학준 저자는 머리말에서 “저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으며, 집필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본인을 소개한다. 역사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공부해 온 ‘평범한 독자’라는 얘기인데, 이 책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던지는 여러 질문을 접하면 그가 치열하게 공부·비판·사유했음을 금방 느낀다. 흔히 인문·역사 또한 교수 또는 학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한다. 치열한 ‘일반인’이 치열하게 던지는 이런 질문은 인문 풍토라는 ‘밭’을 더 깊이 갈고 가꾸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저자는 ‘민중 관점’에 서 전개한 책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조선 500년 역사를 질곡으로 끌고 간 지배 세력 그러니까, 왕조와 양반의 인식·처신·내면·본질을 일관되게 비판한다. 역사를 보는 시선 방향을 크게 틀어야 한다고 질문하고 제안한다. 읽다 보면, 조선이라는 ‘구조’의 답답함에 실망감에 휩싸이지만 저자가 ‘그렇지만 민중의 힘이 있었기에 헤쳐왔다’는 관점을 놓지 않는 덕에 허무해지지 않는다. 책 말미에 민중의 벗이자 동학 지도자 해월 최시형 선생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장본인이 바로 갑오년 농민전쟁(동학혁명)의 악당 전 고부군수 조병갑이었다는 사실이 나온다. 아픈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