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 대신 헬스클럽 만들고
- 교통사고 나서야 스쿨존 대책
- 12명 저자들 어린이 세상 고민
- 한국사회 빈약한 담론 지적
- “약자 존중이 모두를 위한 사회”

지하철에서 본 장면이다. 승객이 비교적 드문 시간대에 어린이집 가방을 멘 아이 열 명 남짓이 객차에 탔다. 교사와 학부모 도우미들이 동행했다. 지하철 타보기 체험 중이란다. 어린이들은 통로 가운데 줄지어 앉아 두어 정거장 가다가 내렸다. 그동안 객차 안의 모든 사람이 어린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몇 살인지 묻고, 자리 양보하겠다는 말도 했다. 한 어르신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꽃밭이 따로 없네!”

이미지 출처 아이클릭아트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표정이 있다. 놀이터를 없애고 주차장을 만들거나, 교통사고로 어린이가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나면 그때야 겨우 학교 주변에 스쿨존이 생기곤 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도서관’을 만들려던 젊은 엄마들이, ‘헬스클럽’을 만들자는 다른 입주민들의 성화에 져서 포기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찬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손쉽게 무시당하거나, 혐오 당하는 어린 사람들. 한때는 우리도 그 이름으로 불렸던 존재, ‘어린이’를 생각해 보는 책이 나왔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는 오랜 시간 어린이의 삶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온 12명의 어른 동료들이 쓴 책이다. 저자의 면면을 보면 공진하(작가, 특수 교사) 김윤일(놀이/교육 연구자) 김중미(작가)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희진(변호사)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변진경(‘시사IN’ 기자) 서정홍(시인, 산골농부) 서한영교(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소복이(만화가) 장희숙(입양원 봉사자) 현유림(초등 교사)이 함께 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에 대한 담론이 지나치게 빈약하고 납작하다고 지적한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날 선언’이 발표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어린이 보호나 성장이 아닌 현재의 어린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사상서나 연구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담론이 빈약한 만큼 어린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라고, 귀한 존재인 것처럼 떠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를 위한 쉼이나 놀이를 허용하는 공간은 너무나 빈약하다. 카페나 식당은 대놓고 ‘노 키즈 존’을 내건다. 어린이들이 주인이어야 하는 학교에서는 어떨까. 학생 수가 줄어서 많은 학교가 문을 닫거나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현실에서도 학생(어린이·청소년)의 인권과 돌봄에 대한 논의는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다. 많은 어린이·청소년을 고통스럽게 하는 학습 노동의 심각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질 뿐이다. 가정이라고 다를까. 어린이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가도 때로는 또 한없이 부담스럽거나 외면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 육아에 ‘독박’ 딱지를 붙이고 대상화하기 십상이다.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가 살아갈 세상을 함께 고민하고 활동하는 12명 저자의 목소리는 어린이에 대한 담론의 지평을 한 단계 깊고 넓게 만든다. 저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가장 약한 존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는 모두를 위한 사회이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고 여전히 어린이를 품고 살아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