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격한 대한민국 팬덤의 시작은 조용필이었다. 아마도 미취학 아동시절이었을 것이다. 무대 위에 오른 한 사람을 향해 비명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환호성이 쏟아지는 것도, 일제히 ‘오빠’를 외치는 현상도 다 조용필 때부터 시작되었다. 종종 집에 놀러 왔던 사촌누나들 역시 브라운관에 등장한 조용필 오빠를 보며 눈물을 쏟을 정도로 깊이 빠져있어 당시엔 생소하기 짝이 없었던 팬덤의 실체를 직관할 수 있었다.
당시 어른의 시선으론 유독 유난스러웠던 팬들의 반응이 어쩌면 못마땅할 수도 있었겠지만 하필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한 오백년’등으로 당대 어르신들조차 사로잡아버렸기에 세대를 통합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후 세상엔 수많은 오빠들이 앞다투어 등장하고 사라지길 반복했고 2024년 10월 22일 오빠들의 시조새 조용필은 20번째 정규앨범 ‘20’으로 돌아왔다.
조용필은 이 앨범이 자신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현재 그의 나이가 74세인 걸 고려할 때 슬프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전작인 19집 ‘Hello’ 이후 무려 11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팝적인 터치가 강한 모던록을 기반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가미되었으며 여전히 예민한 감성의 발라드도 포진돼 있다. 74세 나이가 무색하게 조용필은 ‘오빠’의 음악을 보란 듯이 펼쳐 보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식상한 표현을 조용필은 직접 증명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뮤직비디오로 공개된 타이틀 곡 ‘그래도 돼’는 배우 이솜 변요한 박근형 전미도가 출연하며, 돌고래유괴단이 제작했다. 뉴진스의 뮤직비디오를 다수 제작한 그 돌고래유괴단이다. 세월에 녹슬지 않은 74세 오빠의 목소리로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노래다. 대형 스타디움에서 웅장한 떼 창과 함께 폭발할 것 같은 노래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래도 조용필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21집이 나올 무렵엔 조용필은 아마 세계 최고령 오빠로 기네스에 등재될지도 모른다. 조용필이라는 살아있는 전설과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새삼 고마울 뿐이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한평생을 오빠로 산 뮤지션으로 조용필을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