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뉴스에서는 세계 곳곳의 갈등과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각지의 소식은 내 삶과 무관한 척 외면하고 살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과 내 삶의 불안은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한다. 이 피로감은 날이 갈수록 누적되고 진심 어린 소통은 갈수록 줄어드는 듯하다. 이런 시대에, 고려시대에 제작된 청자나한좌상은 고요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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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박물관에 전시한 청자나한좌상.
부산박물관 제공 |
고려시대는 청자 예술이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청자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았으며, 비취색의 은은한 녹색 빛깔은 고려청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고려인들은 청자를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그 안에 자신들의 미적 감각과 신앙적 염원을 담아냈다. 청자나한좌상은 이러한 고려인의 예술성과 종교적 이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물이다.
고려시대 불교에서 나한은 깨달음을 얻은 자로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돕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나한좌상은 이러한 나한의 의미를 인간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한 유물로도 이해된다. 고려인들은 청자나한좌상에 온화한 미소와 자비로운 눈빛을 부여함으로써, 마음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존재로 승화시켜 그들이 바랐던 인간적 이상을 구체화했다.
부산박물관에 소장된 여러 청자나한좌상은 바라보는 이에게 안정과 위로를 전하며, 세속적 갈등을 뛰어넘는 마음의 평온을 선사한다. 청자의 은은한 녹색과 금빛 장식은 깨달음의 고귀함을 상징하며, 수호자로서 나한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한다. 고려인들은 나한의 얼굴에 담긴 미소와 자비로운 눈빛을 통해 일상 속에서 불법의 가르침이 스며들기를 바랐을 것이다.
부산박물관의 청자나한좌상 중에는 왼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형상이 있다. 살짝 들어 올린 얼굴은 오른쪽 위를 향하고, 이마에서 턱까지 굴곡이 없는 편평한 얼굴에 목이 짧아 다소 경직된 자세이다. 검은 눈썹에 비대칭의 눈, 함몰된 입이 비현실적이면서 어느 정도 고독한 느낌을 자아낸다. 가만히 바라 보고 있으면 내면의 갈등이나 고민을 되돌아보게 되고, 나한의 침묵 속에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신성하고도 고요한 감정들이 스며든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갈등과 불안 속에서, 고려시대의 청자나한좌상은 다시금 중요한 가치를 일깨운다. 이 유물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닌, 인간적인 이해와 위로의 상징으로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나한의 온화한 표정과 깊은 성찰은 욕망과 갈등을 넘어서 진정한 평온을 추구하는 마음을 되살리게 한다. 청자나한좌상은 1000년을 지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의미를 지니며,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가치와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