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자유지역·IMF·코로나 등
- 시대별 젊은이 삶의 굴곡 묘사
- 새 희망과 맷집의 역사 담아내

소설가 김기창의 새 장편소설 ‘마산’(민음사 펴냄)은 좀체 머릿속에서 느낌과 이미지가 떠나지 않는 독특한 마력이 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아! 마산이 있었지.

경남 창원시 합포만 전경이다. 이 일대 지역은 마산합포구이며 옛 마산 권역이다. 마창대교가 합포만을 가로지른다. 앞쪽 멀리 약간 오른쪽 섬이 돝섬(흰점선)이다. 소설 ‘마산’에서 돝섬은 중요한 공간이다. 창원시 제공

‘마산’은 부산의 이웃 고장 마산(馬山)을 배경이자 주제로 삼은 소설이다. 지금은 경남 창원특례시에 속한다. 한국이 수도권만 너무 뚱뚱하고 다른 지역은 앙상한 기형 국가가 돼버렸다고 질타할 때도, 부산이 ‘노인과 바다’라고 한탄할 때도 가슴을 때리는 절실함이나 손에 잡히는 실물감이 안 느껴질 때가 있다. 하도 많이 비슷한 형태로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여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게 다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마산’이 보여준 서사의 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기창 작가는 ‘동미 1974년’ ‘준구 1999년’ ‘은재와 태웅 2021년’의 상황과 시점을 교차하며 소설을 펼쳐 나간다. ‘마산’은 착실하고 다부지면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며 불안정하게 사는 젊은 영혼들이 자기 앞으로 닥쳐드는 삶을 살아내는 소설이다. 그래서 그 자체로 생기가 넘친다. ‘마산의 운명과 한국의 지방 소멸에 관한 일고찰’을 담은 논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마산이 처한 운명, 마산이 휩쓸린 ‘오징어게임’이라는 큰 틀에서 젊은이들은 못 벗어난다. 그리고 마냥 굴복하지도 않는다.

‘1974년 동미’. 마산 기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마산자유무역지역 출발 초기인 1971년에는 22개의 기업이 가동되었지만, 1973년에는 115개의 기업이 운영됐다.” “동미가 마산으로 왔을 무렵, 시중에는 마산으로, 마산으로라는 말이 나돌았다.” 동미는 일자리가 있고 돈을 번다. 하지만 인생은 맵다. 버는 돈은 충분치 않았고 직장 내 복잡한 관계 속에 상처 입고 위기에 처한다. 동미는 이런 말도 한다. “아버지라는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것에 어울리는 존재가 아닌가 봐요.” 그때 아버지들의 폭력과 주사(酒邪) 이야기다.

돝섬을 확대한 전경. 창원시 제공

‘1999년 준구’는 혹독했던 ‘IMF 시절’ 마산 젊은이의 삶을 보여준다. 특수복 만드는 중소기업을 하던 준구네 가족의 삶은 파괴됐다. 마산 경제도 박살 났다. 준구의 친구 레나도 몰락한 부잣집 딸이다. 근데 도벽이 있다. 레나가 말한다. “나는 과거를 훔치고 싶어…미래는 불확실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그런데 과거는 아냐. 과거는 확실해. 원하는 게 있으면 가졌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했어. 걱정도 없고, 부족함도 없었어.” 아! 마산이여.

‘2021년 은재와 태웅’의 세상은 코로나 팬데믹이 덮친 마산이다. 은재 집안은 마산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유복했다. 팬데믹을 이길 힘은 은재 집안에도, 마산에도 없었다. 팬데믹에 호되게 당한 엄마는 은재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산은 어중간해.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냐. … 어쨌든 마산에서 취업할 생각 마.”

이 소설에서 궁지에 몰리는 젊은 주인공들은 다소 엉뚱한 선택을 한다. 대마초를 기르는 일이다. 이건 불법이고 일탈이다. 게다가 ‘원래 나쁜 사람들이어서’ 이런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구석으로 내몰려 뻗친 손이 대마초에 닿은 격이니, 이 젊은이들은 얼핏 요령이 좋아 보이지만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이 과정에서 마산의 명소 돝섬이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작품 말미에 나이 든 동미 누나가 다시 등장하면서 소설은 희망의 기미와 맷집의 역사를 보여준다.

끝 장면에서 준구는 불이 난 돝섬 앞에서 은재와 태웅을 보며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나아지리란 희망이 사라지고, 또 다른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