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행록과 오늘의 여행 유튜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주제일까? 조선시대는 왕이 승인한 정식적인 외교사절단이 아닌, 개인적으로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조선의 사절이 남긴 기록으로 이들의 여정과 방문했던 나라의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기록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여행 유튜버들 또한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을 소개하며 보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는 점에서 사뭇 조선시대의 사행 기록들과 비슷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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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직이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쓴 부상록. 부산박물관 제공 |
‘부상록(扶桑錄)’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행록 중 하나로, 여기서 부상(扶桑)은 해가 뜨는 동쪽 바다인데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萬曆丁巳 回答使一行日本生還日記”라고 하여, 이경직(李景稷, 1577~1640)이 1617년(광해군 9년)에 회답사 겸 쇄환사(回答使兼刷還使)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쓴 사행록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부산에서 일본으로 출발하기 3일 전인 7월 4일부터 같은 해 10월 18일 대마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04일 동안의 여정이 담겨져 있다. 이경직의 후손이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박물관 소장본은 이경직의 손자인 이덕성(李德成, 1655~1704) 가문의 전적 중 하나로 부산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통신사 기록물’인 ‘해행총재(海行摠載)’ 제10책에도 이경직의 호를 쓴 ‘석문부상록(石門扶桑錄)’이라는 표제로 실려있어, 사행기록으로서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부상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앞부분에는 정사 오윤겸(吳允謙), 부사 박재(朴榟) 등 400여 명의 사행원 명단이 실려있고 이후에는 날짜별로 7월 5일 영가대에서 해신제를 지내고, 부산을 출발하여 대마도를 거쳐 8월 26일 교토 근처의 후시미 성에서 국서를 전달한 후, 9월 10일 다시 귀국길에 오르는 등의 여정을 기록했다. 마지막 날 일기에는 일본의 지리와 토산물 풍속 언어 제도 복식 등을 소개하며 마무리했다.
그의 일행이 일본으로 간 주목적은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인 포로의 쇄환이었다. 그래서인지 일기의 내용은 포로자들의 생활과 그들을 데려오는 과정에 얽힌 사연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부상록’은 일본 에도막부 초기의 외교 관련 기록이라는 점과 영가대에서 해신제를 지내는 기록, 조선인 포로를 데려오기 위해 거친 여러 경로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처럼 ‘부상록’은 거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일본 사행길과 당시 접하기 힘든 외국의 풍경과 문물들을 읽을 수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조선인의 소중한 경험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스스로 일정을 계획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오늘날 여행 유튜버 콘텐츠와 통하는 면이 많다.
부산박물관 조선실에는 통신사의 여정과 함께 ‘부상록’의 한 면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관람객들은 조선시대 만리길을 떠나는 그들의 기록을 감상하고 하루 여행 유튜버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