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으로 당혹스러운 연말을 보내다 보니, 나훈아의 노래처럼 (소크라)테스 형에게 세상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은 심경이지만, 영어조차 통하지 않을 옛 노인과 원활한 소통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에 때마침, 영화 ‘하얼빈’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쩌면 안중근 의사라면 적절한 답을 내려줄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 극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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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얼빈’ 포스터 |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 이름이 우선 믿음직스러웠고 할리우드 대작에서나 쓰는 아주 비싸고 좋은 카메라로 라트비아, 몽골의 멋들어진 대자연의 풍광을 담아내어 남다른 때깔을 자랑하니, 날씨가 춥더라도 OTT에 뜨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반드시 극장에서 관람하길 추천한다.
영화는 차갑고 건조하고 묵직하게 진행된다. 보통 ‘안중근 의사’를 그린 영화에서 당연히 기대할 만한 법정 진술 장면이나, 아들 안중근에게 보내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마지막 편지 등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렸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대면하게 되는 순간까지의 험난한 여정과 그 무겁고 복잡한 마음을 차마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짐작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오롯이 집중한다. 어쩌면 그런 점들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과한 신파와 국뽕으로 버무려지지 않고 담담한 시선을 끝까지 유지해서 다행이었다.
영화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화 중 처음으로 안중근 의사와 함께 볼만한 작품을 만난 것 같아서다.
서세원이 감독한 ‘도마 안중근’에서 유오성이 연기한 안중근은 마치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빙의한 듯, 적의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꼿꼿하게 모델 워킹을 유지하며 쌍권총을 난사했고, 쌍 천만 감독 윤제균이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영웅’에서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를 외치는 명성황후의 난입에 식은땀이 흘렀다.
두 영화 모두 안중근 의사에게 보여드리기엔 아무래도 난처하다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2024년 끝자락에 ‘하얼빈’이 등장한 것이다. 어쩌면 안중근 의사는 현빈이라는 배우의 캐스팅에도 내심 흡족해하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