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주민 문화 향유 기회 넘어
- 공동체 살리고 사회문제 개선
- 전국적 구군 단위 문화재단 붐
- 부산진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
- 예술가·주민 주도로 운영 ‘호응’
- 연지야시장축제 기획 등 주목
- 광역문화재단과 정책적 협력
- 설립 활성화 분위기 만들어야
기초문화재단은 동네를 문화로 물들이는 데 앞장선다. 시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지역의 예술 자원(예술가·예술공간)을 모아 동네 곳곳에 문화의 씨를 뿌리고 터전을 가꾼다. 부산의 예술 발전을 논하는 광역문화재단과 달리 기초문화재단은 지역과 밀착해 누구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풀뿌리 문화’를 일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의 삶은 더 행복해지고, 도시의 품격도 높아진다. 전국적으로 기초문화재단 설립 붐이 일어난 데 반해 부산은 아직 걸음마 수준인 점은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의 문화정책 면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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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부산진구 백양문화예술회관 1층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아트展’에서 일러스트 작가들과 주민이 캐릭터 그리기를 하고 있다. 부산진문화재단은 백양문화예술회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전시와 공연, 예술교육을 펼쳐 동네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쿠나 작가 제공 |
■문화로 동네가 변했다
지난해 12월 24일 부산진구 부암동에 있는 백양문화예술회관 1층이 핑크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크리스마스 아트展’이 열린 1층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소녀 캐릭터들이 가득했고, 일러스트 작가 달봉과 쿠나, 주민 30여 명이 캐릭터 그리기에 한창이었다. 부산진문화재단이 예술가와 주민의 만남을 주선한 덕분에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시민이 그림을 그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쿠나 작가는 “예술회관이지만 동네에 자리해 다양한 이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또 그림 그리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2020년 출범한 부산진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백양문화예술회관 운영을 맡으며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과 교육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주민 참여 문화사업 ‘찾아가는 예술마차’는 반응이 매우 좋다. 부산진구를 5개 권역으로 나눠 각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가와 주민이 직접 마을 축제를 기획해 운영하는 것으로, 어둡고 침체된 동네를 밝게 물들이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해 10월 부산진구 연지동에서 열린 ‘연지야시장 축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가 지면 발걸음이 끊기는 연지시장을 밝히고자 주민과 예술가가 나선 덕분에 궂은 날씨에도 300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부산진문화재단 최영 사무처장은 “지역 주민과 밀착해 동네에 필요한 예술 경험을 제공하면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문화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까지 기대하게 됐다”며 “예술가와 주민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주민의 문화 역량을 키우고 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기초문화재단의 역할이자 성과”라고 말했다.
■기초문화재단 설립은 미미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시행과 더불어 기초문화재단 설립 붐이 일었다. 국민의 기본 소득이 오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문화가 있는 삶’으로 옮겨갔고, 시민의 문화 향유 확대 기조가 확연해진 사회 분위기 영향이 컸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각 구·군마다 문예회관 설립에 나섰고, 이를 전문적으로 운영할 주체로 기초문화재단을 설립한 곳이 많았다. 또 2019년 정부가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문화도시’ 사업 선정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기초문화재단을 설립하는 곳도 늘었다.
하지만 부산은 지난 10년간 금정구와 부산진구 2곳만 기초문화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해운대구와 연제구, 북구 등도 기초문화재단 설립을 준비했지만 열악한 재정과 구청장 교체 등의 이유로 포기했다.
다만 최근 들어 기초문화재단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가장 앞선 곳은 남구다. 남구는 오은택 남구청장의 공약 실현을 위해 남구문화재단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부산시의 출자출연기관 설립을 위한 심의를 통과했고, 현재 남구의회에 ‘남구문화재단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남구는 구의회에서 조례안이 통과되면 오는 9월 출범을 목표로 조직 구성 등 구체적인 준비에 돌입할 계획이다.
수영구도 기초문화재단을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정부의 문화도시 사업에 선정돼 내년부터 3년간 국·시·구비 2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인 수영구는 사업을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수영구문화도시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까지 이를 위한 용역을 진행했으며, 타당성 검토 등을 거쳐 오는 10월 설립을 목표로 한다. 또 지난해 정부의 문화도시 사업을 종료한 영도구도 기초문화재단 설립 가능성이 점쳐지는 곳이다.
다만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됐거나 만들 준비에 나선 곳 모두 동부산권에 해당해 서부산과의 문화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화예술 인프라와 자원이 풍부한 동부산에 기초문화재단이 다수 만들어지면 가뜩이나 심각한 동부산과 서부산 주민의 문화 향유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결국은 인식의 문제
기초문화재단은 단순히 지역 주민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문화를 통해 마을 공동체를 되살리고,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 역할도 한다. 또 지역의 척박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데 근간이 되기도 한다. 풀뿌리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그것이 예술에 대한 수요와 공급으로 이어져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부산문화재단 조정윤 생활문화본부장은 “광역과 기초 간 협력이 활발한 서울은 문화예술 생태계가 살아 있지만 부산을 비롯한 지방은 예술이 공적 지원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기초문화재단이 활성화되면 예술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더 활발히 이뤄지고, 양쪽을 이어줄 문화기획자 양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가지지 않고서는 기초문화재단 설립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빠듯한 기초지자체의 살림살이에서 문화 분야에 통 큰 투자를 하려면 문화정책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역 16개 구·군의 재정자립도는 2020년 20.9%에서 2022년 20.4%, 2024년(11월 기준) 19.6%로 매년 수치가 나빠졌다.
일각에서는 광역 문화재단과의 정책적 협력을 통해 기초문화재단 활성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부산문화재단은 올해 ‘광역 및 기초 단위 간 문화정책 협력체계 구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 문화재단 박소윤 정책연구센터장은 “부산도 이제 기초문화재단이 생겨나는 시점인 만큼 이번 연구를 통해 광역과 기초의 역할 정립과 협력 체계 구축 방안 등을 폭 넓게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