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부산박물관에서는 교류기획전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을 개최하여 북미 원주민의 다양한 역사와 풍성한 이야기가 담긴 150여 점의 덴버박물관 소장 자료를 전시 중이다. 그중 이역만리 떨어진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날이 추워지면서 다시금 인기를 끌고 있는 모카신이다. 북미 원주민을 대표하는 신발 모카신은 부족마다 만드는 스타일과 시각적 표식이 다르기에 신을 보기만해도 어느 부족에 속하는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이 신고 다녔던 신발은 어떤 형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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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 가동 유적에서 출토된 나무신발.
부산박물관 제공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조들의 신발은 근대의 고무신이나 조선시대 짚신 등이 있다. 그러면 이보다 앞선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떤 신발을 신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 중 하나로 기장 가동 유적 출토 나무신발을 들 수 있다. 4~5세기경의 삼국시대 일반 백성들이 사용했던 신발로, 바닥판을 발 모양으로 가공하고 사다리꼴 모양의 높지 않은 4개의 굽이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바닥판 가장자리를 따라 총 9개의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구멍에 끈을 매어 발과 밀착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나무신발은 끈을 매는 구멍 중 바닥판 앞쪽에 난 구멍의 위치가 정중앙에 있지 않고 신는 발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일명 ‘쪼리’처럼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에 끼워 신었기 때문에 구멍이 왼발용은 오른쪽에, 오른발용은 왼쪽에 치우쳐 뚫려있다. 따라서 앞쪽 구멍이 왼쪽으로 치우친 기장 가동 유적 출토 나무신발은 오른편 신발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나무신발은 가동 유적 출토품과 같이 바닥판이 발 모양처럼 가공된 것 외에 긴 사각형의 형태인 것도 있는데, 이를 통틀어 ‘판자형 나무신발’로 분류할 수 있다. 판자형 나무신발은 끈을 묶는 구멍이 앞쪽과 양쪽에 총 3개 뚫은 경우와 총 5~9개를 뚫은 경우가 있는데, 전자는 끌면서 신고 후자는 발에 고정해서 신는 장착 방법의 차이에 기인한 결과이다. 그리고 판자형 나무신발과 달리 신발 바닥과 네 면을 모두 막은 ‘고무신 형태의 나무신발’도 부여 쌍북리 백제유적과 안성 죽주산성 통일신라유적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신발은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인 동시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적 지위와 부의 차등, 정치 성향, 심지어 종교까지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왔다. 삼국시대 역시 권력과 부가 집중된 최상위 계층은 화려한 금동신발을 소유하고 무덤에까지 부장한데 반해, 일반 백성은 가동 유적 출토품과 같은 나무신발이나 짚신 등을 신었다. 당시 서민들의 생활을 생생히 전해주는 가동 유적 출토 나무신발은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나무바가지, 빨랫방망이 등과 함께 현재 정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찾아 우리와 같은 땅을 밟고 살았던 선조들의 삶을 느껴보는 기회를 가져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