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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31> 기명절지도

장승업이 그린 ‘조선 정물화’

  • 위순선 부산박물관 전시운영팀장
  •  |   입력 : 2025-01-15 18:30:28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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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정물화가 있다면 조선에는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가 있다. 정물화가 과일 꽃 채소 도자기 유리잔 식기 식탁보 커튼 등 일상에서 접하는 아주 흔한 물건들을 소재로 집안 내부의 특정 장소를 보여주는 느낌이라면, 기명절지화는 마치 아무런 주제 없이 무심하게 펼쳐진 상품 진열대를 보는 느낌이다. 꽃과 과일, 채소는 기본 게와 물고기, 고동기와 도자기, 문방구 등 도저히 연관시키기 어려운 사물들이 어지러이 놓여져 있지만 나름의 조화와 질서가 속에 있다. 기명절지화는 중국의 세조도(歲朝圖), 청공도(淸供圖), 박고도(博古圖), 소과도(蔬菓圖)와 조선의 책가도 등 여러 화목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익숙하지만 낯설기도 한 그림이다.

조선시대 유명 화가 장승업이 그린 기명절지도.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박물관이 2021년 이상민 씨로부터 기증받은 두 폭의 기명절지도는 조선 말기 대화가 장승업(張承業, 1843∼1897년)의 작품이다. 그림을 그린 장승업은 모든 화재를 잘 다룬 천재 화가이지만 특히 기명절지화로 이름이 높았다.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인 김용준(金瑢俊, 1904~1967)은 장승업의 전기(傳記)인 ‘오원일사(吾園軼事)’에서 ‘그때까지 기명과 절지는 별로 그리는 화가가 없었던 것인데, 조선 화계에 절지, 기완 등 유(類)를 전문으로 보급시켜 놓은 것도 장승업에서 비롯하였다’라고 했다. 또 ‘장승업이 사십을 넘었을 때 중국어 역관 오경연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집에 수장된 중국 그림을 깊이 연구하여 그때까지 아무도 그리지 않았던 기명절지를 그렸고 이를 조선 화단에 유행시켰다’고 하여 장승업이 기명절지를 그리게 된 배경과 더불어 ‘기명절지’가 하나의 화목(畵目) 명칭으로 굳어지게 된 계기를 말해주고 있다.

이상민 씨 기증 기명절지도는 장승업 기명절지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 폭의 그림은 화면의 구성과 화풍으로 볼 때 대련으로 여겨지며, 세로로 긴 화면에는 고동기(古銅器)와 분재 화분, 소과(蔬菓), 조개, 꽃가지, 탁자, 벼루 등이 배치되어 있다. 고색창연한 화로와 주전자, 잘 다듬은 매화와 소나무 분재, 아름다운 수선화 화분은 그림을 가진 이의 여유로운 생활과 고아한 취미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더해지는 무, 배추와 조개, 꽃가지는 두말할 것 없이 길상의 상징이다. 이 그림 하단에는 “오원장승업방신라산인법(吾園張承業倣新羅山人法)”이라고 써서 청나라 양주팔괴(揚州八怪) 중 한 명인 화가 화암(華嵒 호 신라산인, 1683~1756)의 화법을 따랐음을 밝혔다.

장승업의 기명절지도는 중국의 그림을 깊이 연구해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자유로운 구성과 대담한 필치, 은은하고 담백한 채색이 중요한 특징이다. 기명절지화는 김용준의 평가처럼 19세기 말부터 장승업에 의해 그 전형이 이루어졌으며, 그의 제자인 안중식과 조석진을 거치며 20세기 초까지 크게 유행하며 지방에서도 활발하게 제작, 유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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