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자연 매개로 현대적 조형 연출
- 세계적 명성 두 작가 진면목 감상
‘정원’과 ‘백자’를 다룬 서로 다른 전시. 그러나 밤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흙을 매개로 한 점은 묘하게 닮았다. 조현화랑(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이 선보이는 권대섭·황지해 2인전은 고유하면서 동질감이 느껴지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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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지해 작가의 ‘When the water rises 물이 오를 때’ 전시장 모습. 조현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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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어두운 조명 아래 노루망(그물과 같은 망)이 천장을 휘이 가로지른다. 노루망 위에는 보송보송한 박주가리 씨앗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노루망에 핀 박주가리 씨앗과 낙엽, 잎줄기 등은 조명을 받은 벽에서 가녀린 꽃으로 되살아난다. 조명을 받은 노루망의 형태는 육각형으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와 닮았다. 생명을 싹틔우는 박주가리 씨앗이 그물망에 담기고, 그것이 번식해 꽃을 피우고, 그렇게 생명의 순환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 어디선가 흙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전시장 뒤쪽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흙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성을 드러낸다.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이런 자연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1층 공간을 채운 것은 황지해 작가의 개인전 ‘When the water rises 물이 오를 때’이다. 정원 디자이너로 유명한 그가 갤러리, 즉 실내 공간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시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어둑한 공간 속에 설치된 노루망과 박주가리를 통해 자연의 섬세한 형상과 생명의 순환을 담아내고, 부산 기장군에서 가져온 흙을 가득 채운 흙방에서 생명력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황지해는 한국의 전통 미학과 현대적 디자인 요소를 융합해 독창적인 정원을 창조하는 작가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2011년 최고상·금상과 2012년 금상, 2023년 금상을 받으며 한국 최초 3회 금상 수상자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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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대섭 작가의 ‘Reduction 돌아오는’ 전시장. 조현화랑 제공 |
1층이 밤의 숲이었다면 2층에서는 밤바다가 펼쳐진다. 짙은 전시장 바닥에 벽오동나무로 만든 차탁(차를 마시는 식탁) 10점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차탁 위로는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백자 30점이 놓여 있다. 어두운 바다 위에 여러 개의 섬이 있고, 그 섬 위로 허연 달이 떠 있는 것 같다. 달항아리로 불리는 백자는 자신만의 은은한 빛으로 다도해(多島海)의 풍경을 생생하게 만들어낸다.
2층 다도해 풍경을 펼쳐낸 것은 권대섭 작가의 ‘Reduction 돌아오는’이다. 40년 가까이 백자를 빚으며 현대적 조형미로 재해석된 달항아리를 구현한 그가 이번 전시에서 차탁 위에 백자를 얹어 밤바다에 뜬 달을 만들어냈다. 2021년 조현화랑에서 달항아리 11점을 철판 위에 올려 런웨이를 거니는 톱 모델처럼 연출하며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에는 밤의 다도해를 통해 백자 특유의 빛을 발현하며 순수하고 깨끗한 기운을 유감없이 내보인다. 권대섭 작가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지만 백자를 본 뒤 1979년 일본에서 도자기를 배워 달항아리 작업에 집중해 왔으며, 리움 삼성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조현화랑 관계자는 “이번 2인전은 흙과 자연이란 주제를 각기 다른 현대적 조형 언어로 탐구하는 전시로, 한국적 미학의 구체성과 확장성을 보여주며 공간 전체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오는 16일까지. (051)747-8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