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님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다. 가만히 보니 자신의 가사(袈裟)를 깁고 있는 모양이다. 스님의 정면 앞 개울가에선 원숭이 한 마리가 실 한가닥으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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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정의 ‘산승보납도’.
부산박물관 제공 |
이 그림은 부산시 유형문화유산 ‘산승보납도(山僧補衲圖)’로, 중국 명나라의 화가 강은(姜隱)의 원작을 심사정이 재해석한 방작(倣作)이다. 방작이란 대가의 그림을 본떠 그리는 것을 이르는데, 그저 모양만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속뜻을 살린다는 점에서 창작에 가깝다.
스님과 원숭이에 집중됐던 강은의 그림에 비해 심사정은 보다 충만한 산수(山水)를 배경에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해 냈다. 스님이 앉아 있는 소나무는 대담한 필묵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필치의 절묘한 강약 조절은 산 중 노송의 입체적 형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부드럽게 그려낸 스님과 원숭이는 비교적 뚜렷한 풍경과 대비를 이루며 방작의 묘미를 드러내고 있다. 풍부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은 바위와 수풀은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던 심사정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평온한 그림의 분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평안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적당한 운치가 보드랍게 담긴 이 작품은 심사정이 지녔던 문인화가로서의 격조를 가늠케 한다. 산승보납도는 비록 방작이기는 하나 조선 후기 회화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심사정의 개성 넘치는 화풍으로 충실히 재해석된 이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표암(豹菴) 강세황의 화평도 더해져 있다.
한편, 그림 속 스님의 바느질은 단순한 옷 수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불교에서 가사(袈裟)는 석가모니가 강조한 검소함과 수행의 상징으로, 그 어원인 산스크리트어 ‘카사야(Kasaya)’는 본래 인도 사냥꾼들의 누더기 옷을 뜻한다. 스님들이 자신을 ‘납자(衲子)’라 부르고 승복을 ‘납의(衲衣)’라 칭하는 전통 역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스님의 바느질은 일상에서 선(禪)을 실천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심사정은 조선 후기 대표 여섯 화가를 가리키는 ‘삼원삼재(三園三齋)’에 속한다. 삼원(三園)은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 오원(吾園) 장승업을, 삼재(三齋)는 겸재(謙齋) 정선, 공재(恭齋) 윤두서, 현재(玄齋) 심사정을 의미한다. 심사정은 가난에 시달렸고 사회적으로도 소외되었지만, 그는 붓과 그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현재(玄齋) 외에도 묵선(墨禪)이라는 호를 사용한 심사정의 모습은 ‘산승보납도’ 속 수행자의 바느질하는 모습과 닮아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지나고 2025년 새해가 밝았다. 고요한 산중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의 어수선한 마음에 잠시 숨을 고르게 해보자. 마치 스님이 가사를 꿰매듯, 지친 우리 마음도 조용히 보듬고 싶어진다. 심사정의 ‘산승보납도’가 여러분 마음속에 작고 따뜻한 쉼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