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소녀가 산길을 내려온다
새색시 베개 같은 나뭇짐 머리 이고
온몸에 산 냄새가 밴 발걸음이 힘차다
솔가리 듬뿍 넣어 아궁이 불 피우듯
굴뚝 연기 퍼져가는 단란한 저녁 무렵
소나무 둥치 아래서 그날 다시 읽는다
솔바람이 청아한 계절이다. 숲이 만들어 내는 바람의 노래 속으로 걷다 보면 유년의 소녀가 내게로 걸어온다. 시인의 시조는 찬 겨울 따스한 굴뚝 연기가 되어 가슴에 스민다.
바람을 거스르며 나는 새는 세상의 찬바람과 맞설 용기가 있다. 배고픈 우리를 살게 한 것은 초라했지만 단단한 마음을 가진 부모님의 옹골진 고집 때문이었을까?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산길을 내려오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산 아래 먼 마을 초가지붕 굴뚝마다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머리에 인 내 몫의 나뭇단이 활활 불타올라 내일로 걸어가야 할 이정표처럼 하늘 위로 길게 솟구쳐 이어졌다. 어스름에 걸린 나뭇가지는 흑백의 수묵화를 그려내고,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마을은 멀리서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이 빨라지자, 공기는 부드러워지고 밥 냄새는 엄마의 품처럼 언 몸을 녹였다.
시인의 마음에서 솔잎 향을 맡는다. 세월이 흘러 고향마을은 멀리 걸린 정물처럼 낯설게 변해가지만, 몸에 스민 고향의 온기는 시인의 손짓 한 번에 왈칵 울음으로 몰려온다.
솔바람 소리가 고단한 나의 등을 소리 없이 쓸어준다. 낯선 도시에서 힘겹게 뿌리 내린 나를 향해 힘내라고 고향의 온기가 되어 토닥여 준다. 나뭇짐 이고 다니던 고향이 있어서 오늘도 행복하다고 나는 화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