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다. 찬찬히 유물을 감상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여러 유물을 비교하며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다. 부산박물관 조선실, 그중에서도 조선통신사 관련 유물 전시 공간은 이러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통신사 행렬을 담은 그림과 정교하게 제작된 판화, 화려한 채색의 도자기 등 다양한 유물들 그림은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통신사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
| 하나부사 잇포가 그린 ‘남가몽도’. 부산박물관 제공 |
그런데 이 공간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다. 에도시대 일본 화가 하나부사 잇포(英一峰)가 그린 ‘남가몽도(南柯夢圖)’다. 언뜻 보면 한 인물의 평화로운 모습을 표현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이 그림은 엉뚱하게도 조선통신사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어찌 된 영문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림 속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남가몽도’는 중국 당나라 시기 인물인 이공좌(李公佐)가 쓴 소설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의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주인공은 순우분(淳于棼)이라는 인물. 술에 취해 잠든 그는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이라는 나라의 사신을 만나 홀린 듯 낯선 세계로 향한다. 그곳에서 공주와 결혼해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되어 남가군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30년 동안 행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전쟁과 슬픔을 겪은 뒤 꿈에서 깨어나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이 그림은 바로 순우분을 맞이하러 온 괴안국 사신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괴안국 사신들의 모습을 조금 더 찬찬히 살펴보자. 사신들의 모습이 마치 조선통신사의 행렬처럼 보이지 않은가. 특히 가마를 멘 관원들의 복식이나 깃발을 든 사람들의 모습은 조선통신사 행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겹친다.
이는 당시 일본인들이 ‘남가몽도’ 속 미지의 나라 사신들에게 조선통신사의 이미지를 투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에도시대, 조선통신사는 단순한 외교 사절단을 넘어 일본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화려한 행렬은 그림으로, 판화로, 이야기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일본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남가몽도’는 조선통신사가 일본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림 속 이미지처럼, 조선통신사는 일본인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난 이 그림은 역사의 한 장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박물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며 자신만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보자. 역사는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상상력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때 더욱 빛을 발한다.